시골길에서 부르는 고독한 영혼의 노래
이메일로 보낸 인터뷰 질문에 송수권(宋秀權, 1940년생) 시인은 답 메일 대신 전화를 걸어 왔다. 이메일을 아예 배우지 않기로 작정해 워드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지리산 빨치산 애기를 다룬 대서사시집 《달궁 아리랑》 700매 원고도 육필로 완성했을 정도이니, 그의 고집을 짐작할 만하다.그는 1975년 '산문에 기대어'로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향토색 풍경과 토속의 빛깔로 전통 서정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시란 고독한 자기 영혼과 만나 대화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한밤중 적막과 고독, 슬픔 앞에서 자신을 직면할 때 우리는 자기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시는 향토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유년의 시골길에서 태어난다. 고개를 몇 개씩이나 넘어 20리 길을 걸어 다녔던 중학교 시절에도 그는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인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훗날 시인이 되어 이 길에서 만났던 사람과 자연을 시로 노래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당시 그 길에서 읽은 유일한 책 《장발장》을 기억해내며, 소설 속 여주인공 코제트라는 소녀와 닮은 한 여학생을 짝사랑했음을 고백했다. 아랫마을에 산 그녀와는 갈림길이 합해지는 신작로에서 만나 내리 3년을 같이 다녔지만,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시 '꿈꾸는 섬'은 그 길에서 만난 여학생을 기억하며 쓴 것이다.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 내 어린 날은 한 소녀가 지나다니던 길목에서/ 그 소녀가 흘러 내리던 눈웃음결 때문에/ 길섶의 잔풀꽃들도 모두 걸어 나와/ 길을 밝'힌다는 것이다. 지금 그 소녀는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완도의 금당도 가화리 앞바다에 낚시를 갔다가 눈썹 같은 두 개의 섬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썼다고 한다.
위의 시 '시골길 또는 술통'에서도 소달구지가 덜컹거리고, 비가 오면 황토물이 벌겋게 넘치는 시골길의 생생함이 묻어난다. 자전거 짐받이에 술통들을 싣고 시골길을 간다. 자갈들이 많은 비포장 시골길에서 울퉁불퉁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술통에서 넘친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은 풀밭과 시골길이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이미 술에 취한 시골길이 주모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서 죽는다. '치마'는 길 위에서 떠도는 인간의 삶을 감싸주는, 따뜻한 고향과 같은 것이다.
그의 시 쓰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문예반 활동을 하며 창작에 몰두한 대신 학과 공부는 뒤처져 낙제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후에 김동리 선생께서 서라벌예대에 오면 장학생으로 받아 주겠다고 해서 몇 개월간의 교편생활을 접고 상경한 그는 스승인 서정주, 박목월 선생께 시를 배우고자 죽도록 매달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널리 읽혀지고 있는 송수권 시인의 등단작 '山門에 기대어'는 사연이 많다. 이 시는 시인이 어느 여관방에서 갱지에 갈겨쓴 채 응모했던 작품인데, 원고지에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지통에 버려졌다. 그것을 심사 과정에서 이어령 교수가 다시 발견하여 당선된 것이다. '휴지통에서 나온 시인'이란 우스갯소리는 이제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되었다.
이 시는 제대하고 온 다음 날 어머니 무덤 앞에서 자살을 했던 동생을 그리며 쓴 시다. 이 시에 등장하는 누이는 그 남동생이다.
어머니가 병중에 낳은 아이로 젖도 못 먹고 할머니 품에서 자란 동생이다.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정에 굶주려 고독하게 자란 시간이 있었기에 문학에 대한 열병이 깊었던 것일까? 여전히 시골길 위에서 낚시와 커피 그리고 담배라는, 시인 스스로 말하는 '삼다(三多)'를 즐기며 그때의 추억을 시로 옮기고 있을 그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