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 |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70) | ||
| 조율 서화 놀이터에서 아이가 넘어지자 울음이 몸 밖으로 확 쏟아져 나온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 꼭 아코디언 같다. 오래전 불안의 연주에 울어 본 기억이 있다. 집을 묻고 엄마를 묻고 이름을 묻던 불안의 한때를 기억한다. 그 후 미아가 되기도 했으나 그 많던 불안들은 다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온몸을 맡기고 싶은 울음이 없어졌다. 아이의 몸 안으로 울음을 넣어주는 엄마 얼룩으로 번진 울음과 흐느낌을 토닥거려 몸으로 다시 들여보내는 저 조율의 한때 불안한 음이 가득 들어 있는, 유년의 중심은 발이 너무 가볍다.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나무들에게서 바람이 쏟아진 후 다시 잠잠해진 가지들 지상의 사물들도 모두 조율의 시간을 갖는다. 공중에서 퍼지는 물줄기와 온갖 소음들이 오후의 놀이터를 조율하듯 어둑한 한기가 몸에게 시절을 묻고 있다. # 파격적이진 않지만 매우 진중하게 현실과 존재의 이면을 읽어내는 시인들이 있다. 그들의 시는 화려한 기교나 요란한 관념의 수사가 없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의 육성이 살아있고, 핍진한 내용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에 오래 시선이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김언희나 최호일 시인처럼 누구도 쓰지 않은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생의 은밀한 풍경을 심도 있게 묘사하는 시도 분명한 존재 의의를 지닌다. 그 때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는 시의 단독성은 또 다른 양상으로 표출된다. 소재나 발화 방식의 특이성은 개성적 시세계의 근간이다. 그러나 얼핏 평이한 듯 하면서 전통적 서정의 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생의 영역을 보여주는 시들도 있다.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작법은 아니어도 오히려 그것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경우이다. 서화 시인의「조율」이 바로 그렇다. ‘몸 밖으로 확 쏟아져’ 나오는 ‘울음’의 정체가 예사롭지 않다. ‘집을 묻고 엄마를 묻고 이름을 묻던 불안의 한때’를 거쳐 오늘에 이른 화자의 몸에서 ‘불안’도 ‘울음’도 다 사라졌다. 아이를 안은 엄마가 아이를 토닥여 울음을 ‘몸으로 다시 들여보내는 저 조율의 한때’는 곧 화자가 거쳐 온 생의 이력이며 과정이다. 몸 안으로 밀어 넣는 울음은 고통과 절망의 다른 이름이며 오랜 인고의 시간들이다. 험하고 거친 생을 조율해온 과거의 삶을 돌아보던 화자의 시선은 마지막 연에서 제3의 사물로 옮겨간다. 이름 하여 시적 도움닫기이며 도약이다. 화자는 ‘나무’라는 사물에서 동일한 생의 풍경을 읽는다. 울음 같은 바람을 쏟아내고 ‘잠잠해진 가지들’은 격랑의 세월을 통과하여 생의 평정에 이른 존재이다. 불안과 울음의 시간을 견디고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불현듯 느끼는 ‘어둑한 한기’에 읽는 이의 몸도 오싹해진다. 존재의 한기, 이 순간 생은 나직한 음조를 띠고 저녁 어스름처럼 다가와 서늘한 전율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시에는 세 개의 풍경이 배치되어 있다. 놀이터의 아이와 엄마, 과거와 현재의 화자, 나무와 지상의 사물들이 시의 중심축이다. 평면적 삶의 풍경이 입체화되어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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