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가을에 묻는다 - 이창수 시인

문근영 2014. 1. 27. 10:28

 

가을에 묻는다
─『귓속에서 운다』(실천문학사, 2011)

                                            이창수

 


   친구 조현수가 호남 최대의 禮式場에서 결혼했다. 호남 최대의 禮式場에서 결혼한 조현수는 딸과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십 년 뒤 우리는 조현수의 부고를 듣고 호남 최대의 禮式場으로 모여들었다. 호남 최대의 禮式場의 간판이 호남 최대의 葬禮式場으로 바뀌어 있었다. 달라진 건 한 글자 밖에 없었으나 禮式場과 葬禮式場의 간격은 이승과 저승만큼 멀었다. 빚보증을 서주고 갈라선 조현수와 나와의 거리만큼 멀었다. 친구 조현수가 고등학교 동창들의 환호와 축가를 들으며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가의 곡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었다. 젊은 그의 아내는 호남 최대의 葬禮式場에서 결혼식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쏟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그녀가 눈물 흘릴 때 하객들이 박수를 쳤으나 이번에는 조문객들이 가슴을 쳤다. 내 친구 조현수가 단 한 글자로 뒤바뀐 이 비운의 건물에서 수의를 입고 조문객들을 맞고 있을 때 나는 결혼식 때와 마찬가지로 홍어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조의금을 세다 생각난 듯 눈물 흘리는 그의 일가를 보면서 禮式場인지 葬禮式場인지 헷갈리던 나는 박수나 가슴 대신 화투를 쳤다. 조현수의 죽음이 실감 나지는 않았지만 호남 최대의 禮式場이 호남 최대의 葬禮式場으로 바뀌듯 이해되지 않는 슬픔에 무작정 동참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건물 간판에 덧붙여진 한 글자에 대해 이해와 동의를 얻지 못하는 조현수와 고등학교 동창들 어느 누구도 간판에 덧붙여진 한 글자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禮式場과 葬禮式場 어디에서나 빠짐없이 밥상 위에 올라와 있는 홍어에 대해, 홍어의 불가해한 맛에 대해 골몰할 뿐이었다.
                                   ―「홍어」 전문

 

   친구와 저녁을 먹고 있는데 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수가 죽었어? 무슨 소리야. 직장 잘 다니고 있는 친구인데! 아니 네 시집을 읽고 있는데 현수가 죽었다는 말이 나와서! 추석 며칠 전 광주에 사는 누이에게 내 두 번째 시집 『귓속에서 운다』를 주고 왔는데 누이는 「홍어」라는 시를 읽다가 놀라서 전화를 건 것이다.
   80년대 후반 내가 전남대 후문 근처에서 살 때 같은 아파트 1층에 고등학교 동창인 조연수가 살았고 아파트 입구 길 건너 문방구 집 2층은 한현수가 살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셋은 단짝이다. 아무리 바쁘고 호주머니가 궁해도 우리는 반드시 일년에 한 번은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이다. 누이가 처녀시절 내 친구 한현수를 보고 저런 성격의 남자라면 당장이라도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누이의 환심을 산 한현수는 지금은 몸무게 100킬로그램이 넘는 만성 고혈압 환자다. 눈이 사슴처럼 큰 현수는 심성이 몹시 착한 녀석이지만 저렇게 무른 성격으로 어떻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나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느릿느릿 열심히 산다.


   조연수는 대학가요제에 나가 금상을 받겠다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기타를 들고 대학가 생맥줏집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순천에 사는 아버지가 올라와 기타를 부수는 바람에 목표를 접고 건축회사에 취직해 있다가 재작년에 건축사가 되어 독립했다. 명절 때 나는 친구들을 불러 놓고 「홍어」라는 시를 쓰는데 너희들의 이름을 빌려야겠다고 했다. 서로 자기 이름을 넣어달라는 두 친구에게 성은 조연수의 것을 쓰고 이름은 한현수를 쓰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홍어」라는 시에 조현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친구들은 내 현명(?)한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집이 나오자 조연수는 30권을 한현수는 50권을 사 갔다. 조연수는 직원들에게 2권씩 나눠 주었다고 했고 한현수는 술을 한 잔 산다고 했다.


   어머니에게서도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내 시의 소재들은 대부분이 내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이거나 사물에서 착상을 얻는다. 내 시를 읽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설명해줄 수는 없는 일이어서 난감했다. 시를 얻고 버리는 일은 내게 지병과도 같은 일상이다. 무엇이 현실이고 거짓인가? 시를 쓰는 내게 그걸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내게는 가장 고약하다.


   누이는 한현수를 닮은 자형을 만나서 결혼했다. 조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조카들을 보면서 나는 세월을 느낀다.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직장에서 승진하는 동안 나는 서울로 떠났다. 서울에서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다. 정권이 3번이나 바뀌었지만 나는 바뀐 게 없었다. 몸과 마음이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돌고 돌아 내려온 추석 날 고향집에 계시는 아버지는 여전했지만 다음 명절을 기약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추석 날 오후 깊어진 가을 강가에 앉아 강물에 잠긴 구름에 가보았다. 저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날아온 나는 누구인가?

 

   사내들이 화투장 뒤집는 동안
   여자들은 찜통에 개를 삶는다
   동백나무가 동박새와 화냥질하는 동안
   초록의 장삼가사로는 다 덮을 수 없는
   황홀한 세속에서
   누군가 오래오래 공염불 읊는다

   찜통에 개를 삶던 오래전 그 여자는
   화투장 뒤집는 나를 보고 깔깔거리고
   저녁을 뒤집어도 아침이 오질 않는
   동백 청동그늘 아래
   누군가 공염불을 읊고 있다
              ―「대흥사」 전문

 

   강물에 떠 있는 저 표정의 나는 누구인가? 텅 빈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스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에』(2011. 겨울)

 

 

▶이창수
전남 보성 출생. 2000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물오리사냥』.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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