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분절된 기억을 잇다 - 김윤이 시인

문근영 2014. 1. 27. 10:29

 

 

분절된 기억을 잇다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창비, 2011)

                                                 김윤이

 


   내가 사랑하는 붉은 방, 햇빛 서글픈
   창문의 붉은 색지
   그 방에 내가 깨어 있는 방
   투덕투덕 화투를 칠 것 같은 이불 한 채
   헙수룩한 경대 위엔 오래된 티비와 재떨이가 놓여 있는
   엷은 병내를 풍기는 방
   내 방을 당신이 조금씩 여는
   내가 생에 대한 느낌 없이 당신을 재우고
   잠시라도 다시 내 방으로 놔두고 싶은 방
   눈을 감아도 내 눈두덩 감아 도는
   붉은 방, 하루도 못 견뎌 내안으로 잦아드는 그림자
   여닫이 창문을 열면
   내 방도 내 몸도 검붉은 물 흘리는
   누추한 나의 입술이 다시 붉어지고
   내가 나만을 사랑하게 누군가 날염하며 휘젓는 방
   그 방에 언제 봄꽃이 피지?
   붉게 울먹이다 방문을 닫아건 방
   하루치 숙박료를 받으러 오는 달소리
             ―「붉은 달」 전문

 

   말해라. 말해보라.
   이런 말. 흔해터진 이 말을. 그 누구도 내게 묻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오년째가 지나가고 있다. 뇌 외상을 입고 무언가 기억해내고 판단한다는 게 무척 힘들었다. 갑갑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 년이 지나가니 식구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안도의 마음도 내비치지 않는다. 나도 적잖이 마음 안정 되어 시집을 발간했으며, 학업도 충실히 하고 있다.
   위의 시는 첫 시집에서 빼낸 시이다. 단평 청탁을 받고 내내 끙끙거리다 불현듯 생각나 원고를 뒤져보았다. 발표하고는 한 남자분에게서 의혹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 방이 무슨 방이냐는 것인데, 의혹의 눈길을 살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어쩌랴. 나와 함께 방에서 마지막까지 밤 지샌 것은 시였다. 김혜순 시인의「쥐」였다. 기껏 바락바락 대들고 죽겠다고 나가 한 짓이라곤 시집을 읽는 것이었다니.
   …한밤중 불을 탁 켜면 그 밤의 어둠이 얼마나 아파하는지를. …너 내장 속에 불 켜본 적 있니? 한없이 질량이 나가는 어둠, 이것이 나의 본질이었나? …나의 존엄성은 검은 내부, 바로 이 어둠 속에 숨어 있었나? 불을 탁 켜자 나의 지하감옥, 그 속의 내 사랑하는 흑인이 벌벌 떨었다. …수만 개의 아픈 빛살이 웅크린 검은 얼굴의 나를 들쑤시네. 첫눈 내린 날, 어디로 가버렸는지 흰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창 밖으로 불 밝힌 집들. 밤은 저 빛이 얼마나 아플까.

   왈칵 울고 말았다. 그렇게 지칠 때까지 울기만 하다가 지쳐빠졌다. 불을 탁 켜고 보니 몰골이 흉했다. 이주일 만에 방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정말 <아메리칸 뷰티>의 영화처럼 모든 단편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파란 철문, 하얀 환자복, 주중에 이뤄지는 치료, 아무나 찾아올 수 없는 병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날들. 이후로도 드문드문.
   부정과 불능으로 패악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있을 때쯤 곁에 아무도 남아주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세상의 수순이었다.
   첫 시집의 단평인데, 이리 쓰잘데기 없는 글로 서두를 늘이고 있으니, 싶지만 내 시집의 창작동기에 뭔가 부여하고 싶은 개인적 욕망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주길 바란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비닐봉지 유영신을 보고 “아름답지 않니?” 라고 묻는 듯 현실적 가치로 아무 쓸모없는 시를 가지고 “아름답지 않나요?” 라며 산다.
   시집이 나오고 꽤 시간이 지나 나를 마주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멜랑콜리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게 되었다. 멜랑콜리는 고대 그리스어로 melancholia는 melas(검은)과 chole(담즙)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구의 4체액설의 분류에 따라 감정형식 중 하나로 ‘우울질’이 있으며, 이것이 토성(Saturn)의 감정이라 불리워진다는 것. 그리고 프로이트는 멜랑콜리를 나르시시즘과 연결시켜 사랑과 그 대상의 상실에 대한 애도에 실패하면 멜랑콜리라는 질병에 이르게 된다고 일컫고 있다. 자기애적 퇴행이라는 것. 유수한 석학들이 그렇다, 라 적어놓고 있으니 그렇구나, 라 할밖에.
  그렇다, 라면 나는 과연 나는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는 애도작업에 실패한 것일까?
   이론에 맞춘 시도 아니고, 이론서를 읽고 쓴 적도 없고, 주변도, 전문가도 우울의 감정이 심하다고 하니 심히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냥 그것이 내 몸에 살아 시의 기제가 되었구나. 그래도 시창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원동력으로 수긍하자며 억지웃음이라도 지어야 하는 것인가?
  잿빛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미술전에 갔다. 물론 혼자였고, 고야전이었다. 멜랑콜리의 표본처럼 들먹여지는 그림. 대상의 살점을 뜯어먹는 그림의 화가. 동판화전이었던듯 싶고 미술전보다는 미술관의 분위기와 계절감에 기분이 처연했던 것 같다. 스페인 미술 거장 프란시스코 드 고야(1746~1828)의 동판화전. ‘얼굴, 영혼의 거울’. 영혼…….
   밑천이 짧아 나름의 영혼론을 내세우지 못하는 애달픔이 있지만 성읍을 감싸고도는 연무에 싸인 듯 늘 내 속으로 침잠하고픈 어떤 기운이 있으니, 이걸 나에게 부여한 신이 있다면 그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게 영혼이라면, 달을 보며 울부짖는 늑대라는 짐승처럼, 어쩌려고, 슬픔으로 슬픔을 배가시키는 꼴로 내 몸에 이 같은 영혼을 넣어주신 것인가. 그가 신인가.
나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 다니기, 내 몸을 좀비처럼 끌고 다니기를 몇 해 하고는 모질게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으로 동생을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 동생이 펑펑 울었기 때문이었다.
   “언니, 충격 받을까봐 말하지 말랬는데, 언니 땜에 아빠 쓰러졌단 말이야.”…….
   동생의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역시 하나같이 눈두덩이 소복이 무은 모습이었다.
   다시, 겨울이다. 계절은 강도를 더해가며 반복되지 않는다. 그저 순환적 반복일 뿐이다. 바뀌지 않는 변화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것이 삶일 수 있다. 마찬가지다.
   사랑의 상실과 공복감을 무엇으로 채우랴. 새로운 사랑뿐이다.
   겨울시를 적어본다.

  

   옥탑방, 창에 대고 입김 불면 하얗게 얼어붙은 한 무리 되새떼가 날아오른다./북쪽은 어디일까. 성에가 녹은 자리로 골목을 굽어본다. 바람이 허랑한 몸속을 맴돌아 나가고 여린 날개뼈가 결빙음 내며 다시 얼어붙는다./새들의 흰 뼈가 쌓인다. 하늘은 이름 없는 무덤으로 흐려진다.//나는 잠 속에서 날개 포륵거렸다./시신의 버드러진 기운처럼 겨울비가 내렸다./나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것일까. 으르르딱딱― 이빨 부딪치면 흰 사기들이 창틀에서 부서져 나갔다. 약한 것들은 제 몸이 부서질 때마다 소리를 냈다./내가 깨뜨린 사금파리가 발밑에서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성에꽃」 부분

              

 

  ─『시에』 (2011. 겨울)

 

 

▶김윤이
서울 출생.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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