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 들여다보기
접사(接寫)의 시학을 위하여
김효은
1. 시를 구연하다 ― 오승근의 시
오승근 시인의 신작시들은 재치 있는 입담과 간결한 묘사로 경쾌하고 유쾌한 그만의 시적 언어의 특색을 보여준다. 이른바 ‘해요체’로 전개되는 그의 신작시는 직접 자연과 대화하는 상황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자연이라는 동화책을 화자가 직접 구연(口演)해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시를 읽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해주며, 오히려 화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독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시는 이른바 독자로 하여금 ‘듣는 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누구보다 먼저 귀 기울여 듣고, 이를 독자에게 친절하게 통역해주는 역할을 성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톡톡 튀는 영혼의 소리를
물방울 언어로 담수하고 있는 호수
종종, 자투리 시간을 던지며 물장구를 쳤지요
호수의 마음 열리고 수심 깊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누설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빙점의 눈금에 멈추자
애독자를, 물빛 언어로 감명 있게 대화를 자습하네요
이따금씩 반사되어 튀어 오르는 고독한 언어들
고독한 소리를 따라 물방울 페이지를 넘기면
호수는 겨울 문장 몇 구절을 큰 소리로 읽어주곤 합니다
…중략…
그러면 물의 나라, 봄의 언어를 산란하며
새로운 항법으로 철새들 곧 착륙을 시도하겠군요
그때 호수는 영혼을 풀어 물빛 언어로 속삭일 거예요
호수의 물방울 대화는 애독자의 눈물이니까요
―「물방울 대화」 부분
위의 시 「물방울 대화」는 앞서 말한 오승근 시의 구연(口演)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늦겨울과 초봄 사이, 얼음이 물방울로 방울져 녹고 있는 호수에서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엿듣고 있다. 물방울이 녹아서 떨어지는 소리를 시인은 “톡톡 튀는 영혼의 소리”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의인화된 ‘호수’는 물장구 치기와 물방울 튀기기를 통해 그만의 “물빛 언어”로 “겨울동화를 봄의 언어로 속풀이”하듯 풀어내고 있다. 호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이따금 “누설할 수 없는” 비밀도 있고, 때로는 “고독한 언어”로 점철된 “수심 깊은 대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늦겨울의 풍경은 자체로 다시 하나의 거대한 동화책이 되어, 호수에게 “겨울 문장 몇 구절”이 되어 읽혀지는 것이다. 호수에 잠시 머물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모두 일순간 호수가 들려주는 “겨울 이야기”의 독자 또는 청자가 된다. 또한 그들은 “겨울 이야기를 복습하”거나, “봄 이야기를 예습하”는 호수의 어린 학생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오승근 시인은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낯익은 자연의 풍경들에 그만의 독특하고 경쾌한 색채를 입혀, 동화책과도 같은 맑고 투명한 시의 언어들을 공감각적으로 풀어놓는다. 자연이 들려주는 “물빛 언어”와 “영혼의 소리”는 그에 의해 통역되어 “애독자들”에게 “새로운 항법” 즉 ‘새로운 시 읽기’로 전향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오승근 시에 나타난 이러한 특징은 「석굴암에서」도 나타난다.
석굴암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되었다면
불가마는 현세의 안녕을 기반으로 축조되었지요
가마의 건축 기법은 전방후원식으로
궁륭천장의 원형주실이 좌불하듯 근엄하군요
주실 한가운데 맷방석이 연화좌대처럼 깔려 있고
붉은 황토 흙이 연화무늬의 문양을 벽화로 새긴 듯
유유자적 현세의 석굴암을 대변하고 있네요
부처가 되겠다고 자비스럽게 찾아오는 중생들
기슭의 정기를 모아 3대가 설법을 공부하고 있군요
―「석굴암에서」 부분
위의 작품 역시 ‘해요체’를 사용하여 이야기하듯, 시적 발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앞의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찜질방의 불가마를 “현세의 석굴암”에 빗대어 구체적인 장면 묘사와 함께 풍자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뜨거운 불가마 속 맷방석 위에 삼대(三代)의 가족들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서 시적 화자는 석굴암을 연상한다. 건축기법은 물론 그 안에 앉아 땀을 흘리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얼핏 이 둘은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많이 다르다. “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된 석굴암과는 달리, 찜질방 불가마는 어디까지나 “현세의 안녕을 기반으로 축조”되었을 뿐더러, 이 공간에 중생은 존재하지만 “본존불의 설법” 따위는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과 푸짐하게 차려진 현대식 밥상이면 온가족이 “본존불의 설법” 없이도 부처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입장료 단돈 몇 천 원에 누구라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승근의 시는 시적 화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 및 구연(口演)에 가까운 친근하고 흥미로운 발성법으로 시가 독자에게 한층 더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2. 틈새의 시간 ― 박소영의 시
박소영의 신작시들은 ‘전생과 이생’, ‘삶과 죽음’, ‘어제와 오늘’ 등 그 틈새에 주목하여, 그 안에서 삶의 진실과 비극성을 도출해내고 있다. 박소영 시에 드러나는 시간과 공간은 현실에서 다소 멀어져 있거나 격리되어 있다. 그것들은 햇살을 비집고 아주 잠깐씩만 모습을 드러내 보이거나, 때로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적나라하게 존재를 드러내 보이고 있으므로 오히려 발견하기 어렵기도 하다.
동정 깃을 여미듯
다소곳이 서 있는 꽃담
만리장성보다 더 굳건하다
지적지적 내리는 비
보고 싶은 사람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이름
발자국 위에 겹쳐진다
다시 그 위에
계룡산 그림자가 내려와 눕는다
―「풍경―신원사 중악단 꽃담」 부분
한 번도
따뜻하게 손 잡아본 적 없는
세상 저쪽 아버지가 보고 싶다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도
훈훈한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나무 틈에 낀
시멘트 덩이로 살아가는 나
산다는 건, 그런 거라고
거미처럼 허공에
집을 짓는 거라며
사람의 살 냄새가 그립다고
중얼거리는 말의 어깨 위에
전생과 이생의 틈을 가르는
시간이 가을을 건너가고 있다
―「틈새」 부분
아마도 “추녀 끝에 실을 잣는 거미줄”이 전자의 모습이라면, “대청 마루/벌어진 틈새” 그 “나무 틈에 낀/시멘트 덩이”는 아마도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녀는 공간과 공간, 시간과 시간 그 틈새에서 방황하며, 문득 “세상 저쪽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시적 화자는 이쪽과 저쪽, 과거와 현재, 어느 쪽에도 온전히 몸과 마음을 기대지 못하고 있다. 죽은 아버지에게도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도”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화자는 따라서 스스로가 “나무 틈에 낀/시멘트 덩이”에 불과하다고 한탄하고 있다. “산다는 건, 그런 거”라는 일종의 체념 의식과 “사람의 살 냄새”에 대한 그리움이 이 시의 주된 정조이다. 그러나 위의 작품들에서 알 수 있듯 ‘틈새’에 관한 시인의 사유가 더 심화, 확장되지 못하고, 한탄과 그리움의 정조에만 머물고 있는 점이 다소 아쉽다. 「틈새」의 4연에서 “산다는 건, 그런 거라고/거미처럼 허공에/집을 짓는 거라며”라는 표현이나 「풍경―신원사 중악단 꽃담」의 “보고 싶은 사람/썼다가/지우고/다시 쓰는 이름”등의 시적 진술은 다소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시인이 토로하는 삶의 괴리감과 고립감을 좀 더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로 표현한다면 보다 깊은 시적 울림을 지니게 될 것이다.
3. 접사의 시학 ― 성태현의 시
성태현의 신작시들은 그의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른 바 “접사의 기술”을 제대로 잘 보여준다. 사진기술에서 접사(接寫)란 카메라를 렌즈의 지근거리(至近距離) 이내로 접근시켜 피사체를 크게 찍는 기법으로, 이는 물체의 일부분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함으로써 일상에서 보지 못하는 면을 강조할 수 있는 재미있고 섬세한 촬영기법이라고 한다. 성태현의 시 역시 이러한 정교하고 미묘한 접사의 기술을 잘 보여준다. 그의 시작(詩作)법을 살펴보면 마치 접사(接寫)촬영을 하듯, 사물의 작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부각시켜,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언어로 정교하게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그시 반 셔터를 눌러보라
접사는, 그대의 오감을 한 단계 고조시키거나
단단한 명사로 품위를 바꿔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니
지체하지도 마라, 그러면
그녀의 볼에서 열뜬 홍조가 사위어갈 것이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귀 기울이다가
바람 멈추고 파르르 잎술 여는 격정의 순간
날렵한 손가락으로 살며시 셔터를 눌러야 하리라
차르르 흐르는 셔터소리가
고화질의 그녀를 품안에 깃들게 할 것이다
접사의 본질은, 눈 안에 가득히 든
오직 그 한 송이 어근에 붙어 솜털 하나 땀구멍까지
긴밀히 접하여 내통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접사의 기술」 부분
위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의 시론을 읽어낼 수도 있다. 그가 말하는 “접사의 본질”이 시의 본질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눈 안에 가득히 든/오직 그 한 송이 어근에 붙어 솜털 하나 땀구멍까지/긴밀히 접하여 내통하는 소통의 기술”이야 말로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정교한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날렵한 손가락으로 살며시 셔터를 누”르는 이 조심스러운 시간은 비로소 “파르르 잎술”이 열리는 에로틱한 “격정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접사의 기술은 장자의 호접몽처럼 “허상일 수도 있으니” 매우 정교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대상을 섬세한 “숨결로 더듬”고 “다각의 굴절”로 조절하고 살펴야하는 고도의 기술이 따르지 않으면, “살포시 속눈썹 내려앉은” 아름다운 ‘그녀’는 일순간 “메두사로 둔갑하”여 “잡아먹을 듯 달려들”지도 모른다. 각고의 노력 끝에 “고화질의 그녀를 품안에” 넣는 그 순간, 사진도 시도 완성되는 것이다.
에루화, 삼거리는 사거리로 바뀌어 가고
사통팔달 사고가 빈발해도 신호등은 점멸하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38선이 그어질 때
삼백만 명이 죽어간 사변이 예고되었듯이
불길한 징후는 숫자 3에서 감지되었다
미터기가 사만 사천사백사십삼 키로미터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4키로미터에 이르는 순간 꽝, 앞차의 엉덩이를 들이받았다
객관적인 사고의 원인은 졸음운전이었다
―「사각의 불면체」 부분
위의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지독한 불면증 환자이다. 그는 아마도 잠자리에 누워 잠들기 위해 숫자 1부터 한정 없이 세어나가다가 지쳐서 그만, 숫자에 관한 새로운 명상놀이를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숫자 3과 4에 관한 집요한 꼬리물기식 연상법은 다소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으나, 작은 것에서 시작한 단순한 사유가 어떻게 나선형으로 무한정 확장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어 의미를 지닌다. 화자에게 숫자 3은 이른바 사물과 사건의 고조된 ‘정점’이다. 따라서 숫자 3이 가지고 있는 이 아슬아슬함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한 “불길한 징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동양에서는 숫자 4를 죽을 사(死)자와 연관 지어 금기시 해오거나, 불운의 숫자로 여겨 꺼려왔다. 시인은 숫자 4가 지닌 이 “4악한 모서리”가 다름 아닌 ‘숫자 3’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있다. “너그러운 3의 등 뒤에 숨은 4의 곡절”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숫자 3이 내포하는 잠복(潛伏)성은 다름 아닌 숫자 4가 지닌 불온함과 불운성인 셈이다. 화자는 교통사고와 같은 개인적인 불운은 물론 6·25전쟁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지닌 비극성에까지 숫자 3이 지닌 불길한 징조를 연관 짓고 있다. 따라서 화자를 괴롭히는 “이 지독한 불면” 또한 숫자 3과 4를 벗어나, 즉 시간상 “사나흘 지나”야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태현의 시는 앞서 말한 ‘접사의 기술’처럼 그 묘사와 사유의 확장이 매우 섬세하고 집요함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고밀도의 시선은 그의 시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만의 렌즈로 응축과 확산, 줌인과 줌아웃, 원근과 경중을 더욱 자유자재로 구가해 나간다면, 더불어 사유와 인식의 폭을 넓혀 나간다면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시에』 (2011. 여름)
▶김효은
경기도 안양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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