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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동옥, 「빈집」평설 / 조연정

문근영 2014. 1. 25. 16:12

 

신동옥, 「빈집」평설 / 조연정

 

 

빈 집

 

  신동옥

 

 

당신은 구두를 가진 적 없고

발가락이 아름답다

나의 구두가 안간힘으로 뾰족함을 벼려 당신의 지붕을 달랜다

 

나는 당신의 시공자가 아니다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

 

벽과 천장

배치와 망치

나날의 조감도

임무와 공기

노동과 희사

 

간결하게 이어가는 템포로 마침내 당신은 완결된다

당신은 조금 가깝고 나는 조금 소란하다

 

기본형의 골조를 거느리고

텅 빈 내부로 흐너져 안기는

 

당신이라는 천장을 기워 입은 나는

당신을 옥죄는 치욕의 척추뼈

 

코르셋

나는 당신의 용적을 셈한다

 

나의 구두가 안간힘으로 뾰족함을 벼려 당신의 지붕을 달랜다

당신은 내 친구가 아니다

 

나는 끝장을 모른다

 

우리는 완벽하다

 

 

 

                             — 《창작과비평》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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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은 완벽한 빈집

 

 

   ‘빈집’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기형도의 「빈집」을 알고 있다. “사랑을 잃”은 시인은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고 적었다. 나눌 수 없는 사랑의 허망함을 시인은 ‘빈집’에 비유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내 사랑”을 빈집에 가둔 것은 그 사랑을 외면한 누군가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고 말하며 그는 불행한 사랑에 쓸쓸한 작별을 고했고,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라고 말하며 어설프게 그 사랑에 눈감아버렸다. 기형도 시의 어떤 구절에서도 우리는 충만함으로 눈부셨던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충만한 사랑의 기억조차 없는 시인은 사랑을 향한 열망마저 마음 한 구석에 꾹꾹 눌러두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린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사랑을 나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홀로 사랑의 마음을 키워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고받음’과 ‘사랑을 홀로 키움’이 동시에, 혹은 연달아 불가능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랑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찬 채로 텅 빈 것이 돼버려야 하는 마음, 현재진행형의 열망을 잠재워야 하는 마음, 기형도는 적의나 오기 없이 오로지 체념과 슬픔만으로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며 그 마음을 묘사했다.

 

   불가능한 사랑이 슬픈 것은 사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일까, 사랑을 줄 수 없기 때문일까. 기형도의 「빈집」은 전자의 슬픔이 후자의 슬픔으로 옮겨가는 장면을 그린다. 여기, 또다른 ‘빈집’이 있다. 신동옥의 「빈집」이다. 제목의 의미를 시의 형태와 어조로 구현하려는 듯 군더더기 없는 최소한의 언어로만 구축한 이 시는 사실 몇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그 의미가 명료해지지 않는 시다. 신동옥은 어떤 정황이나 정념을 거둬낸 채로 ‘당신’과 ‘나’ 사이의 단순한 골격만을 단호한 어조로 제시했다. 그 골격은 어떤 모양일까. 아마도 이 시에서 유일하게 두 번 되풀이되는 “나의 구두가 안간힘으로 뾰족함을 벼려 당신의 지붕을 달랜다”라는 문장으로부터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이 문장은 단문으로만 이루어진 이 시에서 시각적으로도 일종의 뼈대 역할을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저 문장은 어떤 의미일까. 일단 ‘나’의 “안간힘”만을 기억해두고서, 이 시를 전체적으로 읽어보자. 4연을 중심으로 편의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반부를 보자. 1연부터 4연까지는 내 안에 완성되어가는 ‘당신’이라는 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라고 말하며 ‘당신’이라는 ‘빈집’을 짓고 있다. 아니, “간결하게 이어가는 템포로” ‘당신’이라는 빈집이 내 안에 스스로 “완결”되어가고 있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구두를 가진 적 없”는 ‘당신’은 ‘아름다운 발가락’만으로 내 안으로 한발 한발 들어온 것이다. 당신을 내 안에 들여놓는 일은 물론 내가 작정한 일은 아니지만(“나는 당신의 시공자가 아니다”), 내가 거부한 일도 아니다(“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조금씩 마치 예정된 일이었던 것처럼 ‘당신’은 내 안에서 스스로 “완결”되었다. 이처럼 당신이 ‘나’의 일부가 되어가면서 내 마음은 조금 혼란스러워진다.(“당신은 조금 가깝고 나는 조금 소란하다”) 내 안에는 ‘당신’이라는 집이 생겨버렸는데, 그렇다면 ‘나’ 역시 ‘당신’ 안에 나만의 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당신’과 ‘나’는 얼마만큼의 “용적”을 공유할 수 있을까.

 

   후반부를 보자. 5연부터 8연까지는 ‘조감’할 수 없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무너지는 ‘당신’과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당신’이라는 “텅 빈 내부로 흐너져 안기”고 “당신이라는 천장을 기워 입”는다. ‘나’에게 당도한 ‘당신’과 더불어 ‘나’는 허물어지고 찢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과 ‘나’는 무너지며 서로에게 안기고, 찢긴 채로 서로를 깁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안에 ‘빈집’으로 자리 잡은 ‘당신’과 아무 것도 공유할 것이 없지만 ‘나’와 ‘당신’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한다. “나는/당신을 옥죄는 치욕의 척추뼈”라는 구절이 결정적일 것이다. 누가 누구를 옥죄고 누가 치욕을 느끼는가를 판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채로, ‘나’는 ‘당신’ 없이 ‘당신’은 또 ‘나’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듯하다. 채워지는 관계가 아니라 비워지는 관계인 채로 이들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일컬어 신동옥은 “우리는 완벽하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한다. 요컨대 신동옥의 「빈집」은 불가능한 사랑의 설계도가 완성되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치욕의 척추뼈”라는 구절은 비단 불가능한 사랑의 정수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까지 건드린다.

 

   이제 “나의 구두가 안간힘으로 뾰족함을 벼려 당신의 지붕을 달랜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당신을 모른” 채로 당신을 향한 촉수가 무뎌지지 않도록, 결국 ‘나’의 온 존재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모르는 ‘당신’을 어루만질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기형도가 “내 사랑”을 마음 속 깊숙이 ‘빈집’에 가둘 때 신동옥은 그 ‘빈집’에 산다. 홀로된 사랑을 끝장내려는 마음과 그 사랑을 홀로 지켜내려는 마음은 어떤 것이 더 슬픈가. “나는 끝장을 모른다”, “우리는 완벽하다”라고 연이어 말하는 신동옥의 의연한 목소리 뒤로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흐르는 듯하다. 신동옥의 「빈집」에서는 불가능한 사랑과 작별하려는 슬픔이 아니라, 세상과 작별하려는 사랑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구두를 가진 적 없는 당신’과 ‘지붕이 없는 나’는 이같은 안간힘 속에서만 가까스로 완벽해질 수 있다. “치욕의 척추뼈”를 기댄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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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정 / 문학평론가. 2006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당선되며 평론 활동 시작. 주요 평론으로 「순진함의 유혹을 넘어서」 「멜랑꼴리 쏠리다리떼」 등이 있음.

 

 

 

—창비문학블로그 《창문》2011/12/26 ‘이달의 작품’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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