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밤의 연약한 재료들」평설
최정진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어떤 일이기에 나의 내면은 시 앞에서 매번 이토록 격렬한 걸까요. 그러한 격렬한 내면에 대해 토로해보아도 아무것도 토로한 것 같지 않고 안간힘을 다해 침묵해보아도 전혀 침묵한 것 같지 않은 이상한 기분이 있습니다. ‘이해’가 그런 기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 같습니다. 이해란 무엇일까요. 또한 나는 무엇이기에 토로와 침묵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드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그러한 나의 태도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 저는 이장욱 시인의 시의 어떤 동작이 생각납니다.
정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정지라는 동작을 이장욱 시인과 연관해서 기억하게 된 것은 십여년 전 그의 첫 시집에 실린 「몽매한 즐거움으로 한 생을」이라는 시 때문이었습니다. 시 속의 화자는 걷다 말고 “세상의 오래된 비밀”이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을 느끼곤 문득 ‘정지’하여 돌아봅니다. 돌아보며 마주한 이 오래된 비밀은 아마도 우리가 늘 등 뒤에 두어야 할 만큼 두려운 진실과 가장 닮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 절대적 기준을 마주한 화자는 그동안 자신이 모른 척해왔던 모든 시간이 "어쩌면 모든 것이 무효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속에서 자신의 가장 혐오스러운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시의 제목 속의 “몽매한”과 “즐거움”, 이 형용사와 명사의 충돌은 시를 읽는 제게도, 그것이 삶에 관한 것이든 관계에 관한 것이든 어디로도 도피하기 힘든 정적 속에서 제 한계를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떤 참담함 같은 것을 느꼈는데요, 제가 그 참담함 속에서 찾아 헤맨 것은 누군가의 동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이란 일종의 중얼거림이겠지만
의심이 없는
성실한
그런 중얼거림이겠지만
밤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않고
맹세를 모르고
유연하고 겸손하게 밤은
모든 것을 부인하는 중
죽은 사람의 과거가 빈방에서 깊어가고
소년들은 캄캄한 글씨를 연습하느라 손가락만 자라고
늙은 개의 이빨은 우우 짖을 때마다
설탕처럼 녹아가는데
신축건물이 들어서자
몇 개의 골목이 중얼중얼 완성되고
취한 남자는 검게 그을린 공기 속을 흘러가고
밤은 그의 긴 골목이 되었다가
그가 되었다가
드디어 외로운 신호처럼
보안등이 켜지자
개의 이빨은 절제를 모르고
갓 태어난 울음들이
집요하고 가득한 밤을 향해
오늘도 녹아가는 이빨을
필사적으로 세우고
―이장욱 「밤의 연약한 재료들」, 시집『생년월일』
이 시는 밤을 다루고 있습니다. 밤은 그에게 일종의 중얼거림인가봅니다. 하지만 시는 밤을 단지 ‘중얼거림’이라는 단일한 의미로 고정시키지 않고 “~이겠지만”을 덧붙임으로써 중얼거리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중얼거림이라는 행동을 강조합니다. “밤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않고/맹세를 모르고/유연하고 겸손하게 밤은/모든 것을 부인”하며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사실 이외에 중얼거림의 내부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곳은 어떤 의미로도 채울 수 없는 곳이라서 “의심이 없는/성실한” 스스로에 대한 기만으로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한 어떤 확신과, 그런 확신을 갖지 못하고선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미숙한 면모를 확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시의 화자에겐 읊조림이라는 어조가 잘 어울립니다. 읊조림은 행동과 행동의 사이에서 행동으로 인한 힘의 여운이 방향성을 갖는 어조입니다. 대화 중에 어떤 이상한 힘에 이끌려 혼자 침묵했다가 저도 모르게 몇마디 중얼거릴 때처럼 말입니다. 읊조림은 계기처럼 우리를 행동하게 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반문하게 합니다. 내 목소리는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낯선 사물 같은 것입니다. 나의 목소리는 단독자의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과거가 깊어가는 빈방’과 ‘캄캄한 글씨를 연습하느라 손가락만 자라는 소년들’과 ‘우우 짖을 때마다 설탕처럼 녹아가는 늙은 개의 이빨’의 공존이며, 그것들이 흔들리고 부딪히는 소리로서만 겨우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 희미한 소리의 확인은 스스로에 대해 확신보다 의심을 갖게 합니다. 왜냐하면 중얼거림의 사실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밤처럼 불가해한 지점 앞에 서 있음을 우리에게 강렬하게 환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여기, ‘신축건물이 들어서면 몇 개의 골목이 중얼중얼 완성되는’ 밤이 있습니다. 이윽고 ‘밤은 그가 되었다가’ 그가 밤을 통과해 ‘외로운 신호가 켜질’ 때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동의만으로 손쉽게 해결되는 허무함에 관해선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그것을 유예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뒤섞여 자신의 삶의 의미를 누군가에게 비추어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부드러운 중얼거림의 내부에 딱딱한 풍경이 생겨나는 곤혹스러움이, 두려움에 떠는 단호한 소리가, 밤의 어두운 색채가, 건물의 구조가, 어떤 동물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공간의 확대와 축소를 통해 탄생한 시적 리듬을 지나서 저는 “오늘도 녹아가는 이빨을/필사적으로 세우”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 도착합니다.
제게 이 시는 한편의 구조화된 중얼거림으로 읽히는데요, 무언가 근육의 탄력을 갖고 단번에 자라난 것 같은 징그러움이 너무 생생해서 저는 밤처럼 불가해한 지점 앞에 다시 정지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 답할 수 있는 물음이었을까요?
———
최정진 / 1980년 전남 순천 출생. 2007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동경』.
—《창문》창비 블로그 2012/02/07 ‘귓가에 詩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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