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촉감의 서정 |
|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82) |
| 달의 맨발 문인수 달이 한참 뭉그적거리다가 저도 한강, 철교를 따라 어설프게 건너본다. 여기, 웬 운동화? 구름을 신고 잠깐 어두웠던 달, 다시 맨발이다. 어떤 여자의 발 고린내가 차다. # 아껴가며 읽는 시집이 있다. 한 때 신현정의 『바보 사막』이 그러했다. 문인수의 시집 또한 가까이 두고 여러 차례 읽으며 무릎을 친 적이 많다.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권혁웅의 표현을 빌자면 ‘뒤가 깨끗이 잘려나간 결구들’이 주는 매력은 문인수의 시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다. 시집 『적막 소리』를 받고 여러 날 머리맡에 두고 되새기며 읽었다. 그의 시는 편편마다 상상의 보폭이 넓고 깊다. 행과 행의 연결이 너무 촘촘하여 숨이 막히거나 답답한 시들과는 달리 그의 시는 행보가 활달하고 막힘이 없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그만큼 독자가 개입할 공간이 많아 시 안의 여백이 넓다. 좋은 시의 미덕을 두루 갖춘 셈이다. 화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공중에 떠 있는 ‘달’이다. 그런데 그 ‘달’은 온전치가 않다. 원만구족한 형상이 아니라 ‘뭉그적거리다가’ ‘어설프게’ 한강 철교를 건너는, 당당하게 도시에 입성하는 모습도 아니고, 넉넉한 모성의 상징도 아니다. 오히려 결핍과 불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초상이다. 화자의 시선은 다시 하늘의 흰 구름에 가닿는다. 그 구름은 바로 ‘운동화’로 변이되어 독자의 눈앞에 나타난다. 잠시 구름 운동화를 신고 ‘어두웠던 달’은 다시 ‘맨발’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 순간 맨발의 여자에 대한 상상이 증폭된다. 상상의 내용을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 독자들 각자의 몫이다. 개인의 상상 속에서 맨발의 여자는 다양한 형상의 여인으로 재탄생되는 것이고, 그 여인의 허름한 속내와 고단한 생의 이력도 각양각색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화자는 맨발로 도심을 걸어가는 여자의 발 고린내를 맡는다. 이 부분에서 감각의 전이가 이루어진다. 즉 후각적 대상을 촉각적 이미지로 변환한다. ‘발 고린내’는 여인의 피폐한 삶의 표상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최초의 달을 창조하였다. 기존의 달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즉 별종의 사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달과 여인, 구름과 맨발을 통해 모성, 부활, 재생 등의 원형적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읽어낸 남루하고 혼곤한 형상의 ‘달’, 그 달은 천상을 버리고 지상의 험로를 횡단하는 여자이다. 따뜻한 휴머니스트인 문인수 시인은 연민의 회로를 통해 낯선 여인을 불러내어 독자와 애틋하게 만나게 한 것이다. 그는 삶의 세부에 대한 정밀한 시선을 견지하면서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라고 믿는’ 땅위의 시인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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