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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인한의 「강변북로」평설 / 박남희

문근영 2014. 1. 16. 08:01

 

강인한의 「강변북로」평설 / 박남희

 

 

강변북로

 

   강인한

 

 

 

내 가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이 지나갔다.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저 달의 운필은 한 생을 적시고도 남으리.

 

이따금 새들이 떼 지어 강을 물고 날다가

힘에 부치고 꽃노을에 눈이 부셔

떨구고 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밤이면

검은 강은 입을 다물고 흘렀다.

강물이 달아나지 못하게

밤새껏 가로등이 금빛 못을 총총히 박았는데

 

부하의 총에 죽은 깡마른 군인이, 일찍이

이 강변에서 미소 지으며 쌍안경으로 쳐다보았느니

색색의 비행운이 얼크러지는 고공의 에어쇼,

강 하나를 정복하는 건 한 나라를 손에 쥐는 일.

 

그 더러운 허공을 아는지

슬몃슬몃 소름을 털며 나는 새떼들.

 

나는 그 강을 데려와 베란다 의자에 앉히고

술 한 잔 나누며

상한 비늘을 털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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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이미지는 흔히 인생이나 시간의 은유로 사용되어 추상적이고 선형화된 개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잘 된 시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추상이나 관념을 뛰어 넘어 그 울림을 감각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준다. 강인한의 시「강변북로」는 단순한 길 이미지를 넘어서 인간의 생명과 역사성에까지 닿아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이다. 시인이 이 시의 첫 구절부터 “내 가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이 지나갔다.”고 하여 풍경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그가 ‘달’로 표상되는 시간의 울림을 내면적인 어떤 사건으로 바라보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달이 강물을 일으키고 붓을 세워서 한 생을 적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붓’은 물론 시인이 시를 쓰는 일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인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질곡의 역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연에 오면 강을 물고 나는 새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당시 ‘강’으로 표상되는 시간이나 역사가 평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여기서 새들은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붓’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인과도 관계된다. 사실 새가 강을 물고 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고, ‘꽃노을’로 표상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역사로서의 강을 세상에 떨구고 의식 없이 살아갈 때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3연에 와서 구체적인 역사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검은 강’은 ‘검은 역사’의 은유라고 볼 수 있는데, “강물이 달아나지 못하게/ 밤새껏 가로등이 금빛 못을 총총히” 박는 일은 ‘검은 강’의 내력을 은폐하기 위해서 내세운 군사정권의 금빛 경제비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4연에 오면 보다 구체성을 얻게 된다. “부하의 총에 죽은 깡마른 군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깡마른 군인이 강변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쌍안경으로 쳐다본 것은 “색색의 비행운이 얼크러지는 고공의 에어쇼”로 표상되는 군사정권의 절대권력일 것이다. 그 더러운 허공의 역사를 아는지 새떼들이 슬몃슬몃 소름을 털며 난다는 시인의 진술은 질곡의 역사를 견뎌온 시인 자신의 고백과도 같은 것이다.

   이 시의 말미에서 화자는 상처 입은 강을 데려와 베란다 의자에 앉히고 술 한 잔을 나누며 상한 비늘을 털어주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시인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질곡의 역사와 화해를 하고 싶은 것이다. 끝으로 이 시의 제목이 ‘강변 북로’인 것은 ‘북’으로 상징되는 역사 이데올로기를 환기시키려는 시인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이제 시인에게 있어서 남이나 북과 같은 역사 이데올로기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 입은 역사와 마주앉아 술 한 잔 나누며 그동안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던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이다.

 

 

—『시산맥』(2012. 봄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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