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 「흑석동 68-15번지가 번영14길 8이 될 때」 / 박형준
방
박형준
나무라는 이름에는 어떤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서울에서 지겹도록 이사를 다니면서, 나는 언제나 ‘나무가 있는 집으로’ ‘나무가 있는 집으로’ 되뇌며 새집을 구하기 위해 헤매다녔다. 그 숱한 이사의 기억을 나무가 대신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한 것들이 아닌, 그냥 보편적이라 불러야 마땅할 포도나무와 목련나무, 사과나무 같은 이름들. 지하나 반지하 혹은 지층이 내가 사는 집들이었고, 그것은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심은 더러 아름답기도 한 차단막이었다. 그러나 나무는 나에게는 바닥과 어둠속의 상처를 가려주는 커튼이었다. 그 커튼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라든지 그 커튼 바깥으로 세상이 너울대는 모습 같은 것을 바라보며, 나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성공과 삶의 본질 같은 것들을 생각하였다.
열여덟 번을 집을 바꾸어 이곳에 오니 삶이란
그렇게 떠돌아다니고도 깃들일 집이 있다는 것이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어서
가로등이 나의 방을 굽어보면서 빗소리를 빛으로 바꾸고 있는 것을
환희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이다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홀로 돌아와보면 왠지 나만 쓸쓸한 것 같지만
세상일에 한없이 초연한 이 방이야말로 더욱 쓸쓸하다며
창문이 바람의 힘을 빌려 콩콩거리면 그래 외로운 이는 외로운 이와 함께
소주 한잔 하는 것이라며
한일상회에서 소주 한병 사들고 오는 것이다
소주병을 따 술 한잔 쭉 들이켜면서
나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행복하고 제 아내가 갈수록 좋아진다 하더라
가족이 옷처럼 편안해졌다 하더라 침묵으로 일관하는 빈방에게 전하면서
옥탑방이 옥탑방의 손을 잡고 줄줄이 저 한강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병원과 교회가 가로막는 광경을 지켜보기도 하며
정체 모를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숱하지만
이웃집 남자가 하루걸러 살림을 부수는 통에 심심하지 않고
번개가 반짝이는 밤이면 물고기가 인간을 구원하는 먼 나라의 신화를 생각하면서
한강에 빠진 남산과 인왕산과 북한산이 내 방 창문에 물방울로 맺히는 것을
아름다이 만져보고 또 만져보는 것이다
― 차창룡 「흑석동 68-15번지가 번영14길 8이 될 때」
아마 ‘~것이다’체의 효시는 백석일 터인데, 위 시는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이라는 시가 연상된다. 이 시의 제목에서 ‘남신의주’와 ‘유동’은 지명이고 ‘박시봉’은 사람 이름이다. 시의 초반부를 보면 거리를 헤매던 한 남자가 목수일을 하는 박시봉이라는 주인집에 세 들어 사는 정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방(方)’은 댁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시의 제목은 편지봉투의 발신인 주소에 해당되고 시의 내용은 편지인 셈이다. 위 시는 재개발로 인해 주소가 새롭게 바뀐 흑석동의 한 지명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시의 내용을 보면 어느 사람에게 보내는 것 같지는 않다. ‘~것이다’의 서술어가 향하고 있는 것은 ‘이 방’ 혹은 ‘내 방’이다. 시의 내용이 빈방에게 전하는 편지, 혹은 말이라고 해야 할까.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갔다가 밤에 홀로 돌아오면서 이 세상에 쓸쓸한 사람은 자기인 것만 같지만, ‘세상일에 한없이 초연한 이 방’이 더 쓸쓸하다는 것.
그 사내는 어두운 거리를 지나 집으로 오는 내내 비를 맞은 것 같다. 또 가로등이 빈방을 굽어본다는 표현에서는 가로등이 자기 대신 어두운 방을 밝히고 있었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비에 젖으며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내내 시의 화자는 나만 쓸쓸하고 친구들은 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빈방으로 들어오니 가로등불이 환하게 방을 적시고 있다. 창밖의 ‘빗소리’를 ‘빛’으로 바꾸며 너만 쓸쓸하게 아니라고, 네가 친구들과 놀 때 거리를 헤맬 때 너의 쓸쓸한 빈자리를 지켜주던 이 방이 있었다고 가로등은 화자에게 말하는 것 같다. 시의 시작인 “열여덟 번을 집을 바꾸어 이곳에 오니 삶이란/그렇게 떠돌아다니고도 깃들일 집이 있다는 것”은, 그러니까 모든 쓸쓸한 것들(빗소리)을 ‘빛’으로 바꾸는 가로등을 바라보면서 나온 생각이 아닐까. 그래서 그러한 빈방과 술을 나누며, 나이 들수록 아내가 좋다거나 가족이 옷처럼 편안해졌다거나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편하게, ‘이무럽게’(이물異物이 없다는 뜻. 「‘이무럽다’라는 말―유강희 시인에게서 배우다」) 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시에 나오는 가로등, 빗소리, 바람, 창문, 소주 한병, 번개 등등은 어쩐지 서울에 살면서 나무를 찾아 빈방을 구하려고 헤매는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가슴이 먹먹하다. 누군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올 때 가슴에 청운의 꿈을 품지 않은 자 있을까. 당나라 때의 문인 장구령(張九齡)의 「거울을 비춰 백발을 보다」라는 시에도 나오지만 ‘청운(靑雲)’이라는 말에는 실패한 자들의 회한이 묻어 있는 것 같다. 거울 속에 백발을 비춰보며 젊은 날의 푸른 꿈을 회억하는 것. 그렇다. 청운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다 등용할 수는 없다. ‘등용(登龍)’은 잉어가 중국 황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이란 거센 급류의 협곡을 거슬러오르면 용으로 승천한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많은 잉어들이 물살을 거슬러오르다 좌절하게 되는데, 거기서 등용문이란 말이 생겼다. 용이 되지 못한 숱하게 많은 물고기들의 고통, 아마 깨달음은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삶에 좌절과 고통이 없다면 구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차창룡의 시를 읽다보면 나무와 물고기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온다. 그는 불교 설화에 바탕을 두어 ‘나무 물고기’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내기도 하였다.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려 고통을 받는 물고기에 대한 시편들이다. 나무와 물고기의 결합, 그러나 나무 때문에 고통을 받는 물고기라니. 그 물고기가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목어가 되고, 그것이 작게 만들어져 목탁이 되는 과정과 이 시의 후반부가 맞물려서 읽힌다. 번개의 반짝임으로 드러난 누추한 방의 창문에 세상의 모든 풍경이 물방울로 맺힌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고기 등에 고통인 나무가 없었다면, 가로등과 번개가 치는 재개발지역의 빈방이 없었다면, 깨달음이나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소중하다는 인식은 관념의 치장에 불과할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하느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뵙기 위한 것일 뿐
―「내가 옥탑방을 선택한 이유」 부분
나의 꿈은 2층이나 3층 정도의 집에서 사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은 적당한 성공, 저 밀림의 나무처럼 하늘까지 쭉쭉 뻗는 나무도 아니고 겨울에 마른 잎새로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눈을 맞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백석 식의 ‘갈매나무’도 아닌, 그저 보편적이고 평범한 나무의 신장이 창을 가리는 그런 집에 내 이름으로 등기를 내어 살면 족하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반지하나 지층에 살면서 타협을 배우고 그 정도의 높이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내가 이사 가면서 만난 나무들은 어쩌면 노력하면 가능한 그렇고 그런 정도의, 그러나 내게는 눈물겹기도 한 삶의 크기이며 오브제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차창룡은? 그는 쓸쓸하여도 세상에 고통받아도 백석의 갈매나무처럼 굳고 정하다. 그는 ‘하느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기 위해’ 옥탑방에 산다. 늘 그렇지 않았던가. 차창룡은 언제나 고통과 구원의 문제를 동시적인 것으로 앓으며 시를 써왔지 않은가.
토방 대신 마당을 방으로 사용하면, 밤마다 하늘이 더욱 가까이 내려온다. 은하수의 강물이 몸속으로 들어와 뱃속에서 꾸르륵거리고, 별빛은 살갗에 박혀 소름으로 돋는다. 산과 들에서 이사온 나물과 약초 들이 함께 누워 별을 바라보다가, 늦잠을 자다가, 햇살에 실컷 싸우나하고는 마침내 우리와 하나가 된다. 콩타작 보리타작은 당연히 이곳에서 했지만, 학질에 걸리면 홑이불에 감겨 뜨거운 햇살을 몽땅 받기도 했던가? 마당방이 병원 입원실이기도 했다니, 그 병원에 입원한 적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아득하다, 아니 뜨겁다, 땀이 철철 흐른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아 마당방에 누워보리. 하, 더운 지방의 해먹에 누운 원시인의 얼굴을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검은 물소가 핥아주듯이, 밤이슬의 싸늘한 기운은 이제 그만 들어가 자라고 우리의 얼굴을 시나브로 핥아주는군.
―「마당방―미당의 「마당방」을 생각하며」 부분
나는 이 시에서 차창룡에게 숨겨진 원초적인 집 한채를 발견한다. 그의 집은 결국 이런 것이다. 마당이 방이고 방이 마당인 곳. 그는 고향의 모든 별들을 손톱으로 눌러 죽이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다시금 고향의 마당방으로 돌아갔다. 병든 이의 병원 입원실이기도 한 그 마당방에 입원하여 뜨거운 꿈을 꾸고 있다. 66년생 동년배이기도 하고 시단의 동료이기도 한 그를 나는 사모한다. 이제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수행을 하고 있지만, 그는 이 차안(此岸)에 있을 때도 언제나 거리와 지상의 방 한칸을 동시적으로 보았고 자신의 고통과 깨달음을 온몸으로 앓아서 통과해낸 것들로 세상에 발언하고 지상의 낮은 자들에게 연민할 줄 알았다. 이 세상에 대한 시적 실천과 연민, 『고시원은 괜찮아요』라는 시집에서 나는 치열하고 슬프고 굳고 정한 그것을 본다. 그리고 아프고, 나는 그가 자랑스럽다.
창룡은 언제나 그런 친구였다. 동년배 문인들끼리 술이나 먹자고 만든 ‘66년생 말띠’(지금은 ‘말떼 모임’으로 바꾸어 부르지만) 모임에서도 그는 늘 유머를 잃지 않고 자리를 편하게 만들 줄 알았다. 그의 시처럼 그는 이무럽다. 늘 세상과 친구들에게 이무럽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와 연락이 닿는 친구로부터 그의 법명이 ‘동명(東明)’이라고 전해들었다. 이제 그의 원초적인 ‘마당방’은 ‘절방’으로 바뀌었지만, 모든 세상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아침햇살이 그가 있는 동쪽에서 환하게 밝아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언제 때가 되면 그 병원 입원실로 입원하듯 스님을 뵈러 가야겠다. 그리고 동명스님이라는 법명을 합장하며 조심스럽게 부른 다음, 얼른 연이어 ‘창룡아’라고 절이 울리도록 좀 큰 소리로 불러야겠다. 그 이유야 물론 벗이 ‘절에서 쓴 시 좀 보려는’ 심보임은 자명할 것이다. 그의 시는 언제나 내게 갑자기 칼로 찔리는 것 같은 급습으로 다가오고 회한처럼 삶을 불쑥 생생하게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
박형준 / 196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빵냄새를 풍기는 거울』『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춤』『생각날 때마다 울었다』가 있다.
—창비문학블로그 《창문》 2012/02/16 ‘귓가에 詩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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