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등에세이- 사람들은 왜 시를 쓰는가 |
| 입력시간 : 2011. 11.04. 00:00 |
정윤천 (시인)
엊그제 서울에서는 한 편의 잘 익은 시가, 아니라면 시적인 풍경이 내 눈앞으로 배달되었다. 대학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연대시' 같은 상황이었으며 절묘한 매듭 같았다. 그 시는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아직도 집이 없는 사람들과 노인당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평소 뉴스 불감증 환자이던 필자에게 채널을 잠시 고정시키게 하는 허벌난(?) 매력을 발산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시를 쓰는가" 이름을 대면 금방 알아 챌만한 한 유명 시인이 그의 책에서 자신을 향해 물었던 폼이 나는 문장이다. 필자는 아직 그의 저 도저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내공을 갖추지 못하였으나, 그가 말하는 '사람'이 쓴 시에는 마음으로써 확인되는 문장 너머의 그늘이 있다고 믿는다. 그에 걸맞는 실천이 있어야 하고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시는 여타의 소설 같은 것들 곁에서, "소설 쓰시네." 라고 말할 수 있고, 흉중에 품고 다니는 '말씀'의 뽄새가 자신보다 더더욱 극진하거나 그럴 듯이 꾸며진 연설문 쪼가리들을 향하여 "연설하고 계시네." 라고 비아냥거리거나 눙칠 수 있는 위의가 서려 있다고 또 믿는다.
그리하여 최소한 이런 경지의 언술만을, 그 언술을 따라 흘러가는 말의 강물을(행실을) 시적인 순간이거나 풍경이라고 느끼는 게 평소에 시를 대하는 나의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시에는 떫거나 설익은 것들을 스스로 멀리하거나 경멸하는 자세. 그 꼿꼿함이 배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 치의 양보심도 없이 시나 정치를 향해서만, 왜 너희들만 갈수록 어렵다거나 형편없다는 식의 책임회피성 발언만이 난무하는 지난한 골목에서, 지금 우리의 시와 시인들은 "남한산성"(김훈의 소설) 의 비국(菲國)과 같은 시절을 어렵사리 감당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둘러 절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 속에서도 엊그제 서울에서 쓰여진 것 같은 눈물겨운 한 편의 시들은 다시 태어나고,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채로 다른 모양과 내용의 시들 역시 쑥대덤불처럼 키를 높이며 우거지고, 다시금 그 경계와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세상과 세태 속에서 날개를 기른 새들은 제 목소리로 지저귀며 날아오른다.
앞으로도 시가 계속해서 더 어려워지거나 어두워진다고 한들 대수이랴. 강물은 사행으로도 제 길을 건너고, 건너고 또 건너서 도정을 다하는 것을, 작금. 비국의 기색이 아니라 패국의 나날이 우리들 앞에 펼쳐진다 하여도,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는 아름답거나 쓸쓸하거나 지극한 것들의 촉수들이 견뎌서 싹을 틔우고, 끈을 잇대어 나아가거나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으니, 그러니 시여! 너는 또 얼마나 갸륵하고도 눈물 나는 존재이며 종목이었는가. 따라서 나는 내 안의 시 한 편도 고통과 고난과 어려움을 다스려 환함과 희망과 사랑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그 뿐일 것이었다.
마음으로 문득 가을이 깊어져서 '사람'이 쓴 시 한 편을 실제로 챙겨 읽어 본다.
가을이 물든 감잎을 시엽지라 부른/사람이 있었다// 감잎이 종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적겠는가/ 외딴 뒤란 저녁연기/ 금빛 사장을 둥실 떠나는 나룻배/ 막차가 떠난 뒤/ 홀로 헤매는 바람도 좋겠지만. (이해리/ 감잎에 쓰다)
시엽지 (枾葉紙). 흔히 쓰이는 말은 아니다. 흔하지 않음이 오히려 시인의 감성통을 울렸다. "감잎이 종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적겠는가" 그렇게 묻다가, "벌레 먹힌 잎이 왜 지극한지/ 상처 많은 단풍이 왜 마음 당기는지" 하필이면 시인은 그런 "물음 적어" "푸른 하늘 아래 기다리겠다" 한다. "수만 잎의 답신이 돌아올 때까지."
쓰다가보니 첫 원고부터 시에 대한 이야기로만 연재를 마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몇 편쯤의 시들을 졸고를 통하여 함께 읽기도 하였다. 오늘은 근작이기도 한 자작시 한 편을 새겨보는 것으로 대미를 삼을까 한다. 나는 또 어찌하여 “시를 쓰는가.”
서울사투리에 찌든 서울 여자가/ 전라도에 있는 어물전 앞에 납시었다/ 조구*에게 대고 평소의 서울 말투로 물었다/ 아줌마, 저게 조기 맞지요/ 어물전 아짐이 싱겁다는 표정으로 건성 대꾸했다/ 긔여/ 아니잖아요 조기잖아요/ 긔당께/ 아이 참, 조기가 맞는데/ 긍께, 긔여// 서울 여자가 안달이 나서/ 지나가는 행인을 붙들고 물었다/ 아저씨 이거 조기 맞지요/ 긔구만//긔여.** (정윤천/ 긔여)
* 조기를 뜻하는 전라도 말
** 그렇다는 의미의 전라도 말.
-[무등일보]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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