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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경인의 「산책하는 사람」평설 / 강영준

문근영 2013. 12. 6. 13:51

김경인의 「산책하는 사람」평설 / 강영준

 

 

 

산책하는 사람

 

   김경인

 

 

나는 계속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지루한 이야기를 위해 백년간 돌아가는 물레처럼

잠을 깨면 내게 매달린 너무 많은 창문

커다란 자석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 뒷걸음치는

아주 작은 쇳가루처럼

나는 나로부터 가장 먼 창문

먼 곳에서 더 먼 곳까지

재로 만든 도시와

이름 없는 개들의 식탁에서 내가 돌아오는 동안

길은 손가락을 활짝 펼치듯

다섯 여섯 그리고 아홉 개의 가장 빛나는 날개털을 보여주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탕아처럼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간다

불 꺼진 집들이 창문을 매달고 각자의 비밀을 향해 날아오르고

나는 나에게 남은 아흔 아홉 개의 털실

돌아오다 실수로 흙탕에 떨어진 한 올

다만 여기에 남아

조금도 깨지지 않은

완벽한 유리의 세계 안에서

 

 

 

                          —월간《현대시》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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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지연되는 죽음을 겪고 있는 주체는 실패를 감았다 던졌다 하는 프로이트의 포르트-다(fort-da) 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프로이트는 포르트-다 놀이가 아동이 어머니와 결별하는 아픔을 놀이로 상징화하면서 결별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즉 실패를 던지는 체험을 어머니와 결별하는 것으로, 실패를 감는 행위를 어머니와 결합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이 놀이를 통해 아동이 수동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부재와 현존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 성장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동은 실패를 던졌다 감았다 하면서 전과는 다른 성숙한 존재로 성장한다. 김경인의 시에서 죽음의 징후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와 닮았다. 그는 죽음에 다가섰다 멀어졌다 반복하면서 감각과 에토스의 붕대를 풀어내고 전에 없던 새로운 주체의 민낯과 마주한다.

 

   주체가 계속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주체가 반복적으로 동일한 길을 산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산책이란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완료적인 보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산책은 거칠게 말하자면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즉 끝없이 반복하며 걷는 행위이며 이 점에서 포르트-다 놀이에 가깝다.

   주체가 산책을 나갔던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나로부터 가장 먼 창문”이 있는 곳이며, “재로 만든 도시”이다. 모든 상징계적인 것이 연소되어 버린 “재로 만든 도시”는 죽음의 또 다른 징후다. 그러므로 주체는 죽음으로 가는 길을 반복해서 산책하고 있다. 그곳은 커다란 자석의 자성이 미치지 못하는 곳, 감각과 에토스가 무화된 곳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나’는 산책을 하다 돌아오던 도중 실수로 흙탕에 한 올의 털실을 떨어뜨린다. 이 말은 산책의 과정, 즉 죽음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의 존재론적 의미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의 정체가 ‘떨어진 한 올’이든지, 아니면 ‘남은 아흔 아홉 개의 털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미가 죽음의 문턱에서 변환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상징계의 유리가 깨어지지 않았어도, 혹은 타자성에 변화가 없는데도 ‘나’는 변환되었다. 이는 타자성과 무관하게 죽음의 반복을 통해 또 다른 자아의 모습, 다시 말해서 순수한 자기 정체성의 어느 속성을 취했음을 의미한다. 죽음의 국면에서 주체에게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 이처럼 김경인에게 주체의 죽음, 그리고 이를 통해 얻는 순수한 자기 정체성, 혹은 영원한 실재란 특정한 무엇이 아니라 죽음의 화학반응을 통해 끝없이 생성되는 복수적 존재에 다름 아니다. 그것들은 각기 다른 이름을 지닌 채 한 올 한 올의 실이 되어 무한히 새로운, 무한히 생성되는 주체를 직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 풍경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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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준 / 문학평론가. 2010년 《시와 반시》로 등단. 저서 『거꾸로 읽는 소설 이야기』『묻고 답하는 현대시 카페』등.

 

 

-http://cafe.daum.net/poemory(푸른 시의 방)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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