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락의 「소금사막」평설 / 박남희
소금사막
신현락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3만 5천년의 시간은 화석이 모래로 전이하는 데 충분한 풍량이어서 학자들이 사막의 발원지를 추정하는 근거로 들기도 하지만 밤마다 모래가 바다에 빠져 죽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3만 5천년 후, 그 자리는 소금사막의 발원지가 되었다.
모래의 여자는 정갈한 소금으로 밥상을 차리고 바람을 기다린다 사막에서 바람을 많이 먹은 종들은 종종 변이를 일으키는데 그들이 사랑을 할 때는 서로의 입안에 소금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 남자들이 여자를 찾아오는 건 소금에 중독된 까닭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래의 동선을 보면 최초의 호모사피엔스가 여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바람의 혀는 감미롭게 모래의 능선을 애무하지만 모래의 여자는 모래만 낳을 뿐이어서 몇 만 년 동안 처녀의 지평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가끔 소금이불을 햇빛에 펼쳐놓기도 한다
지금도 소금에 중독된 남자들이 모래의 여자를 찾아 간다 그러나 소금을 맛본 바람에게 혀를 내맡기다가 대륙을 이동하는 모래의 변종에게 눈을 다치기도 한다 눈 먼 사내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모래의 여자는 심해의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소금을 그들 앞에 뿌려준다 그렇다고 소금을 한 주먹씩 집어 먹는 건 사막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무리 극소의 미량이라도 한 알의 소금으로 치사량에 이를 수 있다
사랑을 많이 가진 남자의 입안을 들여다보면 소금바다가 출렁거린다 그들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 사랑을 찾아 흰 뼈만 남은 몸으로 사막을 노 저어 간다 모래의 여자가 가시나무로 소금을 찍어 인간의 간을 맞추는 것은 이 세상으로 사막이 번져오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2012년 제3회《시산맥》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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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락 / 1959년 출생. 1992년〈충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따뜻한 물방울』『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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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 전에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랐던 바다가 녹기 시작하면서 소금호수를 이루게 되고 그곳의 건조한 기후로 인해서 소금이 사막의 모래처럼 펼쳐져 있는 소금사막이 생겨난다고 한다. 신현락의 「소금사막」은 이러한 과학적인 사실을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절묘한 사랑시로 변모시킨다. 시인은 “그들이 사랑을 할 때는 서로의 입안에 소금을 조금씩 흘려보낸다”라든가 “소금에 중독된 남자들이 모래의 여자를 찾아 간다”는 진술을 통해서 “밤마다 모래가 바다에 빠져 죽는 이유” 즉 태고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랑의 근원적 진실을 도출해낸다. 여기서 ‘소금’은 ‘사랑’과 ‘생명’의 은유적 매개물로서 ‘사막’과 더불어 이 시 전체를 묶어주는 중심 이미지다.‘사막’은 척박한 세상에 대한 은유이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주검들이 오랜 시간 풍화되어 모래무덤을 이룬 죽음의 공간이다. 그런데 시인은 ‘소금’과 ‘사막’을 절묘하게 결합해서 생명력 있는 사랑의 서사를 창조해낸다. 시인은 소금사막의 유래를 “밤마다 모래가 바다에 빠져 죽는”행위를 통해서 도출해낸다. 여기서 ‘모래’가 ‘사막’의 제유로 사용되고 있다면 ‘소금’은 ‘바다’의 제유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래가 바다에 빠져 죽는 행위’는 사랑의 근원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주검이 사랑(소금)을 통해서 소생하는 생명의 발현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사막은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들이나 그 화석이 풍화된 죽음이 실재하는 공간이다. 이런 죽음의 공간에서 ‘소금’은 사랑과 생명을 공급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준다. 실제로 우리 몸에서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미네랄이며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유기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금사막’은 생명과 죽음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시인은 “사랑을 많이 가진 남자의 입안을 들여다보면 소금바다가 출렁거린다”는 진술을 통해 소금 사막을 인간의 육체성과 결합시킨다. 즉 ‘소금 사막’은 인간이 살아가는 척박한 세상이면서 동시에 생명과 결핍의 공간인 인간의 육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이 “죽어서도 썩지 않는 사랑”을 찾아다니는 행위는 ‘소금 사막’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육체와 삶의 공간에 “썩지 않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죽은 후에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소금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실존은 본질적으로 부패의 속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말미에서 모래의 여자가 가시나무로 소금을 찍어 인간의 간을 맞추는 행위는 부패하기 쉬운 인간과 인간 세상에 대한 제의적 행위로서, 점점 사막화되어가는 인간 세상에 대한 경계의 아포리즘으로 읽힌다. 이것은 “눈 먼 사내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모래의 여자는 심해의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소금을 그들 앞에 뿌려준다”고 한 시인의 진술과도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이 시의 모래의 여자는 생명과 사랑의 상징인 소금으로 사막화되어가는 세상을 소생시키는 일종의 샤먼이라고 볼 수 있다. 모래의 여자는 어찌 보면 척박한 세상에서 시를 통해서 영원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은유로도 읽힌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가시나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척박한 사막에서도 뿌리를 내려서 질긴 생명을 유지하는 ‘가시나무’로 소금을 찍어 인간의 간을 맞추는 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몫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신현락의 「소금사막」은 ‘소금’과 ‘사막’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결합해서 “썩지 않는 사랑”의 영속성과 부패한 세상과 죽음조차 넘어서는 사랑의 힘을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서 보여준 걸작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소금 사막’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발굴하고 그와 연관된 ‘모래의 여자’나 ‘가시나무’ 이미지를 도출해서 변질되기 쉬운 사랑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인의 직관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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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1956년 경기 고양 출생. 숭실대 국문과,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폐차장 근처』『이불 속의 쥐』『고장 난 아침』, 현재 고려대 강사.
—『시산맥』(2012. 여름)
—http://cafe.daum.net/poemory(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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