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류인서
얼룩말의 검은 무늬와 흰 무늬 사이에서 바람이 생겨난다지
피아노의 흰건반과 검은건반 사이에서 풀들이 자란다지
혓바닥을 쟁기 삼아 말밭을 갈던 연인들이 가시나무를 심는다
서로의 귓속에 흉터 속에 심는다
초원을 벗어난 얼룩말이 가시나무를 버리고 맛있는 가시잎도 버리고
내 검은 가로줄무늬 티셔츠의 주름 안으로 뛰어들어온다
술래와 숨은 이가 자리를 바꾸고
심드렁해진 연인들은 다시, 제가 그린 그림의 새장에 갇혀 날개를 퍼덕인다
그들은 흩어진 허공의 새 발자국을 그러모아 세어보고 또 세어본다
가시나무처럼 마디 많은 계절 대신 나는 소심한 얼룩말이나 꺼내 초원으로 돌려줄까 생각 중이다
유리컵 물그림자가 상 위에 말갛게 샘을 파는 사이
상사병 걸린 바람이 가뿐, 피아노 건반을 딛고 장미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류인서 시집 『신호대기』,《문학과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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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말(言)의 언어에도 울타리가 있다. 그 울타리 안에서는 온갖 욕설과 배반의 싹을 키워낸다. 그러나 그 말들의 밖은 욕설과 배반의 싹이 자라지 못한다. 이미 말이 자라는 세상에는 수 많은 잡초제가 처져 악성의 말들만 자라기 때문이다. 류인서 시인은 이런 삶의 내면에 흐르는 사람의 정신을 흔든다. 삶이라는 울타리가 누에가 실을 뽑아 제 몸을 감추는 은밀한 집처럼 말의 울타리룰 쳐 세상의 상식과 삶 사이를 차단한다. 상상으로 충분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현실이 이미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상상의 울타리 넘어에 불었던 바람, 꽃을 피우는 듯 흐르는 음악이 귀를 움직인다.귀가 들었던 음악은 발가락, 손가락 끝에 생각의 솜사탕을 받아들게 한다. 이러한 삶의 상상이 우리가 기대하는 삶의 신호가 아닌가. 그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신호대기처럼, 문득 나를 껴앉는 별빛을 만나니 죽었던 내 눈빛을 보는 듯하다.
ㅡ 출처: http://blog.naver.com/(한결시추천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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