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 조지훈
낙화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선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은 외롭고 고단하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있기에 세상의 역사는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는 것이다. 생육신 중의 한 분인 이맹전(1392-1480 ; 본관 벽진碧珍, 호는 경은耕隱, 시호 정간貞簡)은 수양대군이 1453년 계유정난(癸酉精難)을 일으켜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하자, 고향인 선산으로 낙향하여 눈멀고 귀먹은 사람의 자세로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는 관직에 있을 때에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으며 검소하고 효성이 깊었다.
지훈의 "낙화"를 암송 할 때 마다 문득 문득 집안의 중시조(中始祖)이신 정간(이맹전의 시호)할아버님 생각으로 울컥 목이 메이곤 한다.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지키기 위해 부인 까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멀고 귀먹은 생육신으로 살아 내시면서 얼마나 외롭고 고단하시었을까 가슴이 시려 온다. 밤새 잠 못 이룬 어느 봄밤 "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는 여명의 신 새벽, 바람이 불어와 봄꽃이 무너지듯 지고 있다. "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허하"면서도 "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으셨을 것만 같은 그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가슴 속에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교수 dsseo@shingu.ac.kr)
ㅡ출처 :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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