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고영민] 기념탑 근처

문근영 2013. 9. 26. 13:51

기념탑 근처

 
고영민

 

 

물앵두가 익는다

꽃이 피어난 만큼 앵두는 벙어리처럼

익어가고

 

앵두꽃이 언제 피기는 했었나

물앵두가 익을 무렵

우리는 벌써 앵두꽃을 잊네

 

맨 처음 꽃을 보고 열매를 본 이여

물앵두는 어떤 맛

 

비이슬은 먼저 물앵두의

단맛을 훔쳐가고

빛깔을 훔쳐가고
 
한 바구니 흰 꽃을 팔아 붉은 열매를 얻은 우린

물앵두가 익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초여름을 맞고

몸에 비해 큰 씨앗을 품은 열매는

꽃을 내려놓고 잠깐 묵념을 하듯

기억하는 이에게나 겨우 한 손

그 무른 맛을 전해주고

 

 


―월간『현대시』(2013년 6월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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