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탑 근처
고영민
물앵두가 익는다
꽃이 피어난 만큼 앵두는 벙어리처럼
익어가고
앵두꽃이 언제 피기는 했었나
물앵두가 익을 무렵
우리는 벌써 앵두꽃을 잊네
맨 처음 꽃을 보고 열매를 본 이여
물앵두는 어떤 맛
비이슬은 먼저 물앵두의
단맛을 훔쳐가고
빛깔을 훔쳐가고
한 바구니 흰 꽃을 팔아 붉은 열매를 얻은 우린
물앵두가 익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초여름을 맞고
몸에 비해 큰 씨앗을 품은 열매는
꽃을 내려놓고 잠깐 묵념을 하듯
기억하는 이에게나 겨우 한 손
그 무른 맛을 전해주고
―월간『현대시』(2013년 6월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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