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밥집
손택수
남해 앵강만 쪽에 가면 아는 분이 펜션을 하고 있는데 새로 지은 흙집 지붕 위에 솥뚜껑을 떡하니 얹어놓았다
앵강만 유자향도 마늘향도 좋지만, 서울서 귀양 온 별 하나 반짝이는 노도 앞바다 밤하늘도 좋지만 밥솥 모양이 흙집이 좋아 나는 눈매 선한 쥔 양반 따라 나무도 하고 장작불도 때어보곤 한다
조개껍질 같은 섬에 들어 조개 속살처럼 말랑말랑해져서 섬집 사람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는 며칠 여기서는 설익은 나도 한 톨 쌀이 될 수 있으려나 솥뚜껑 뒤집어쓰고 쩔쩔 끓는 흙바닥에 앉아 파도 소리 통통 뱃소리 약으로 듣다가 잘 익은 밥알이 될 수 있으려나
그렇게 잘 익으면 솥뚜껑 위에 앉은 구름을 삼겹살처럼 지글지글 구워서 노도 앞바다 푸른 파도 탈탈 털어 쌈을 곁들이고 싶은 집
서울서 언제 올 거냐 전화가 오면 나는 지금 한참 뜸 들이는 중이라고 밥 다 되면 돌아갈 거라고 대답한다 앵강만 바닷바람 속에 문풍지 밥물처럼 끓어오르는 흙집
ㅡ시집『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솜나리/박숙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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