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귀뚜라미
정현종
가을이 오기는 했다마는
무슨 섬돌이라고
내 책상 아래서
소리를 내고 있는 귀뚜라미야.
네 맑은 음악
네 깨끗한 소리
그다지도 열심히
그침 없이 오래오래
내 귀에 퍼부어
귓속에
마르지 않는 샘물을
세상에서 제일 맑은 샘물을
솟아나게 하고 있는
귀뚜라미야.
지난여름의 내 게으름과
게으르기 쉬운 정신을 일깨우는
17밀리미터 작은 몸의
날개에서 울려내는
너의 소리는, 예컨대
저 모든 종교라는 것들의 경전들을
다 합해도 도무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할
말씀이시다 실솔(蟋蟀)이여.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실은 들리자마자 알아들었거니와)
열심히, 의도한 듯 열심히.
내 귀에 퍼부어
내 가슴을
세상 제일 맑은 샘물의
발원지로 만들고 있는
실솔이여.
정현종 시집 『광휘의 속삭임』문학과 지성사
...................................................................................
뒤집혀진 계율 / 윌리엄 워어즈워드
일어나! 일어나! 내 친구여, 그리고 책을 버려라
그렇잖으면 반드시 허리가 굽어지게 될거야.
일어나! 일어나! 내 친구여, 그리고 맑은 표정을 지어라.
왜 이렇게 힘들여 괴로와하느냐?
태양은 산꼭대기에서
신선하게 무르익은 광채를
온 기다란 푸른 들판에 펼쳤다
첫 아름다운 노란 저녁 광채를.
책? 그건 지루하고 끝없는 투쟁.
자, 숲속의 홍방울새 노래를 들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음악은, 정말이지
그 노래 속에 더 많은 지혜가 들어 있다.
또 들어 보라! 얼마나 쾌활히 티티새가 노래하는가를!
그도 역시 결코 시시한 설교자는 아니다
만물의 빛 속으로 나오라
자연을 네 스승으로 삼아라.
자연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축복해 준다-
건강이 숨쉬는 자연발생적 지혜
명랑이 숨쉬는 진리를
봄의 숲속에서 일어나는 한 충동은
네게 인간에 관하여
도덕적 선악에 관하여 더 많이
가르쳐 줄 수 있으리라 모든 현자들보다.
자연이 주는 학문은 아름답다.
우리의 참견하는 지성은
추하게 만든다, 사물의 아름다운 형상을-
우리는 죽인다 해부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은 그만 집어치워
그 불모의 책장들을 닫아라.
나오너라, 그리고 가져오라 너와 함께
관찰하고 수용하는 마음을.
....................................................................................................................................
두 편의 시를 감상하고 나면 이 두 시에 담긴 깊은 속뜻을 굳이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는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 실체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인간된 우리의
본원 속에 천부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감성과 이성으로 교감되며 인지되고 공명할 것입니다.
정현종 시인은 말하기를, "시인의 영원한 꿈은 익명성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또한
시는 어조(語調), 즉 가락과 토운(tone)이 거의 전부라 해도 무방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즉석에서 어조는 곧, 절실함 그리고 그 절실함 속에 들어 있는 '진실', '생생한 날것'인 채로의
진실이 있기에 만인이 공감하고 감동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좌중에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귀뚜라미처럼 한 점의 복선도 없는 맑은 소리로 본성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합니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김주완] 돌부리 (0) | 2013.09.19 |
|---|---|
| [스크랩] [신경림] 귀로(歸路)에 (0) | 2013.09.19 |
| [스크랩] [정현종] 시인 (0) | 2013.09.18 |
| [스크랩] 이승하 교수의 `내 고향 김천을 노래하다` - 연재 2 (0) | 2013.09.18 |
| [스크랩] [박찬선] 궁궁을을 -약한 사람들의 세상이 곧 온다 (0) | 2013.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