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현종
아직도 일기장 같은 거
학원일기나 희망일기 같은 걸
사랑하며 망쳐놓으며
심장은 없고 바람뿐이며
재산은 수상한 피와 광기뿐이며
본능에 생각을 싣고
감각에 정신을 싣고
꿈을 적재하는 무역이 있으며
의사와 약을 가장 미워하고
독자를 가장 미워하고
십자가를 자로 사용하다 들키고
죽음이 던지는 미끼에 매달려 쩔쩔매고
망측한 기쁨에 빠져서 부르짖고
사물을 컴컴한 죽음으로부터 건져내면서
거듭죽고
즐거워할 때까지 즐거워하고
슬플 때까지 슬퍼하고
무모하기도 하여라
모든 즐거움을 완성하려 하고
모든 슬픔을 완성하려 하고......
시대의 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강도를 쫓아 밤새도록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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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정현종 시인의 시 강론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강연을 주선한 분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청중들 사이에서 이 시를 낭송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떨리던지 중간에-'사물을'이 '사물이'로 프린트 되어 있어서-
뭔가 말이 턱 막혀 그 다음 행을 읽다 몇 번을 버벅거렸는데, 역시 완벽을 위해서는 단 하나의 철자라도 어긋나면 사달이
나나봅니다. 그런데 정말 천진난만하게 강연과 담론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그 무서운 충격이 가시지 않습
니다. 제가 본 것은 사진으로는 죽어도!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시인의 형형한 두 눈에 제 두 눈을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는 일, 아니라면 적의適意나 살의殺意, 내지는 오묘한 사랑의 뼈와 경멸의
피로 된 수상한 바다를 감춘 응시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억겁 같은 10초-정말 약10초 였습니다만- 제 유전자 이중
나선구조와 염기서열을 낱낱히 스캔해 버린신 듯 저는 영혼의 뼈가 시려오는 걸 느꼈습니다. 시인이란 것. 정말 무서운 것.
방문지를 찾는 천상의 시가 그 영험한 거처를 찾고 있을 때 신성한 제물로 씻겨진 몸, 그렇게 고결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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