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무게
허만하
계절 따라 푸름의 깊이를 달리하는 하늘에 떠서 스스로 윤곽을 지우며 바람에 모습을 만들어주는 구름. 엷디엷은 새털구름 한 자락 무게는 코발트블루 물 너울을 헤치는 새끼 고래 한 마리 무게와 맞먹는다.
낯선 도시를 헤매는 나그네에게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고향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저무는 타관의 길에 스며드는 쓸쓸함을 떠올려주는 구름의 길. 바람의 길 위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기 위하여 태어나는 구름. 구름은 거울이다. 구름은 물결을 헤치는 고래가 아니다. 목숨의 실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허만하 시집『바다의 성분』(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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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천변만화(千變萬化)의 구름은 세속적 삶에 찌든 나를 숙연하게 했다. 허만하의 시가 또한 그러하다. 팔순의 나이를 눈앞에 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오히려 젊다. 언어로 풍경(길, 바람, 강, 바다, 구름 등)의 멱살을 붙들고 불멸의 정신인 ‘야생의 꽃’을 피우려는 중단 없는 그의 시는 늙을 수가 없다. 한 마디로 그의 언어는 “수직으로 서서 번득이는 시의 목소리”다. 그의 시집 속에서 뽑아 읽는 금강(金剛)과 견성(見性)의 아포리즘은 독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물은 틈새를 허용하지 않는다. 바다에 균열이 생기면 둘레의 물은 빈자리를 향하여 맹수처럼 달려드는 너울이 된다. 형태가 없는 물은 눈 먼 몸으로 언제나 현재보다 낮은 자리를 찾는다. 정신도 물처럼 형태를 가지지 않지만 어김없이 눈부신 높이를 찾는다.”(「바다의 문체」), “바다(海) 안에는 어머니(母)가 있다. 발가숭이 알몸의 내가 최초의 물을 온몸으로 느꼈던 기억 이전의 바다. 내 목숨 최초의 열 달을 한 마리 물고기처럼 캄캄한 그 안에서 촉감으로 사귀었던 태초의 바다. 어머니 사랑처럼 한계가 없는 아, 눈부신 바다.”(「바다의 성분」), “받아들임은 어디서나 거룩한 빈손이다.”(「운문사 들머리에서」), “그리움이 사람을 앞으로 걷게 한다.…그리움의 걸음은 길을 남긴다.”(「그리움은 길을 남긴다」) 등의 눈부신 높이의 아포리즘, 그렇지 않은가. 이 시에서 허만하 시인은 ‘구름의 무게’를 새끼 고래 한 마리의 무게에 비유했다가 곧바로 부정한다. “바람의 길 위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기 위하여 태어나는 구름”은 “목숨의 실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우리들 모두가 갖고 있는 목숨(생명)의 실상을 비추는 거울, 무서운 말이다. 구름의 걸음 속에 바람도 물도 빛도 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미리 깨우친 선각자들 -고운(孤雲) 최치원, 백운(白雲) 이규보, 수운(水雲) 최제우- 자신의 이름에 구름을 굳이 새겨 넣었던 것인가.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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