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정호승] 밥값

문근영 2013. 9. 18. 12:39

밥값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ㅡ출처 : 시집『밥값』(창비, 2010)/『대륜문학』(2012,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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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일까?

-정호승의 시 「밥값」을 읽고

 

 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일까.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가길 희망하지만, 막상 이러한 질문에 부딪치게 되면 막막하기만 하다. 사람에 따라, 혹은 그가 처한 현실적 상황에 따라 이에 대한 답변은 썩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그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밥값’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밥값’제대로 못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 남을 밟고 일어서기보다는 남을 위해 배려하며 기꺼이 자기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인생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시인은 지적한다. 밑바닥(‘지옥’)을 경험해본 자만이 인생에 대해 겸허해지기 마련이라고. 스스로의 생에 대해 겸허해질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날은 식탁에 앉아 예수와 피자를 나눠 먹으며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던

장기려 박사의 사랑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최후의 만찬」 부분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사람 대신

스스로 아사감방으로 걸어들어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돌아가신

내 진리의 고향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부분

 

 말은 쉬워도, 실제 그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인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러한 삶을 실제 실천에 옮기는 인물들이 간혹 우리 주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의 시에서 언급한 장기려 박사나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의 삶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보통 ‘성자’라고 부른다. 평균적인 인간으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숭고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실천에 대해, 그들은 단지 성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요 실천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직접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며, 따라서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는 어떤 경우에라도 포기해서는 안 될 소중한 덕목이요 가치라는 사실이다. 시인 정호승이 전하고자 하는 인간다운 삶의 실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로 쌓아올려지기보다 밑에 내려깔리기를 원한다

지상보다 먼 하늘을 향해 계속 쌓아올려져야 한다면

언제나 너의 발밑에 내려깔려

누구든 단단히 받쳐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벽돌」 부분

 

오늘도 물은 차고 물살은 빠르다

그대 부디 물속에 빠지지 말고

나를 딛고 일어나 힘차게 건너가라

-「징검다리」 부분

 

 이 시들에서 시인은 그런 자신의 사유를 ‘벽돌’이나 ‘징검다리’와 같은 사물을 통해 구체화된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바라는 삶이란 스스로를 낮추고 낮은 곳으로 향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존재는 평소에는 있어도 없는 듯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가 비게 되면 대번 표가 나고 만다. 그런 인생,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바로 시인 정호승이 추구하는 인간다운 삶의 표본일 것이다.

 

ㅡ문학평론가 김유중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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