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인숙에서/ 송경동
사랑을 잃고
가을바람에 날리는 거리의 검정 비닐처럼
길을 헤매다
하루 저녁
어느 낯선, 외등 하얀, 오래된 여인숙 명부에
가늘어진 이름 석 자
다소곳이 적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생수 한 병 요쿠르트 하나 수건 한 장 받아들고 들어가
깨진 벽 유리처럼 구겨진 커튼처럼
녹슨 창살처럼 벽지무늬가 다른 네 벽 처럼
우두커니 섰다가, 한순간 무너져
때 탄 이불보로 입막고
흐느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씨팔년 더러운 년 나쁜 년 치사한 년 퉤퉤 하며
마지막 자위를 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삶이 왜 잠깐
들렸다 가는 여인숙처럼 미련 없는 것이어야 하는지를
세상이 왜 아무도 가져갈 것 없이 다만
잠시 쉬었다 가는 여인숙 같은 것이어야 하는지를
왜 또 저 하늘에는 저렇듯 많은 정거장들이 빛나고 있는지를
비루한 여인숙
가끔은 어느 절간이나 성당보다
더 갸륵하고 평온한
내 영혼의 안식처
-『현대시』(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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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기형도 시인 시편) 때문인지
이 시를 예전에 접했을 때는 새롭지 않았다
오늘 이 시는 나에게 말한다
“삶은 그다지 고상하지 않아도 된다.”
“목욕을 해도 해도 푸석한 날이 있다.”
“여인숙에서 퀴퀴한 잠을 잘 때도 있다.”
“마음과 몸이, 또 상황이 다르게 돌아가는 날도 있다.”
우뚝 솟음은 무너짐이 있기 때문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에 생살을 비트는 날이 있기에 하늘 정거장을 눈부시게 올려다 본다.
시인의 말처럼 ‘삶이 왜 잠깐
들렸다 가는 여인숙처럼 미련 없는 것이어야 하는지를
세상이 왜 아무도 가져갈 것 없이 다만
잠시 쉬었다 가는 여인숙 같은 것이어야 하는지를'
'깨진 벽 유리'가
'구겨진 커튼'이
'녹슨 창살'이
'벽지무늬가 다른 네 벽'이
'때 탄 이불보'가
'더러운' 사람이
'치사한' 사람이
'마지막 자위'가
알려 준다.
어둠에서 빛을 찾는 연습처럼
살면서 한번쯤은 꼭
"오래된 여인숙에서 무너진 가슴을 혼자 지혈해 보라"
권하면...... 너무 가혹할까?
사랑의 기본 자세는 고통임을 알기에, 제대로 아픈 장소,
송경동 시인이 추천하는 오래된 여인숙에서
모든 미숙한 영혼이
오늘 바닥을 치고
내일 우뚝 솟기를!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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