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유안진] 연인의 자격

문근영 2013. 8. 20. 09:51


연인의 자격/ 유안진

 

   

초가을 햇살웃음 잘 웃는 사람,

민들레 홀씨 바람 타듯이,

 

생활은 품앗이로 마지못해 이어져도,

날개옷을 훔치려 선녀를 기다리는 사람,

 

슬픔 익는 지붕마다

흥건한 달빛 표정으로 열이레 밤하늘을 닮은 사람,

 

모습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사랑하기에

너무 작은 자신을 슬퍼하는 사람,

 

모든 목숨은 아무리 하찮아도 

제게 알맞은 이름과 사연을 지니게 마련인 줄 아는 사람,

 

세상사 모두는 순리 아닌 게 없다고 믿는 사람,

 

몇 해 더 살아도 덜 살아도

결국에는 잃는 것 얻는 것에 별차이 없는 줄을 아는 사람,

 

감동 받지 못하는 시 한 편도

희고 붉은 피톨 섞인 눈물로 쓰인 줄을 아는 사람,

 

커다란 것의 근원일수록 작다고 믿어 작은 것을 아끼는 사람,

 

인생에 대한 모든 질문도 해답도

자기 자신에게 던져서 받아 내는 사람,


자유로워지려고 덜 가지려 애쓰는 사람,

 

맨살에서 늘 시골집 저녁 연기 내음이 나는 사람,

 

모름지기

이런 사람이야말로 연인 삼을 만하다 할지어다.

 

 

 

- 시집『봄비 한 주머니』(창작과 비평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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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에 비매 피다

 

 

크크 선녀를 기다린단다.

이해된다
머슴같은 왕자를 기다리다 포기한 사람으로서.

 

도대체 민들레 홀씨 - 바람 타는 듯!  초가을 햇살웃음을 웃고
흥건하면서도 밤하늘처럼 티가 안 나려면.......
 
캬~! 맨살에서 시골집 저녁 연기 내음! 그것도 늘!-

모름지기 요런 자격을 갖췄을 때 이런 연인을 만나겠지?

 

봄비같은 가을비 내리는 날
이 시를 주머니에 넣어 두고 시작한

고운 술상 앞에서
잠시 벙어리 되어 그녀의 빗소리 들으니
가을비에 봄꽃이 폈다.

'연인조차 자유로워지려고 가지지 않는다'는

자격 미달의 변에도 불구하고.

 

- 김선아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비매/김선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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