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김연대] 斷想

문근영 2013. 8. 13. 11:59

 

 

 

斷想

 

김연대

 

 

저 산봉우리 뿌리째 뽑아

푸른 잉크 찍어 한 백 리 그어봤으면

굽이쳐 돌아가는 강물 이마에 감고

휘몰이로 한 천 리 돌려 봤으면

바다 복판 털썩 주저앉은 섬

그런 방점 하나

쿡 찍어 봤으면

그런 시 한 줄 써 봤으면

그렇게 한 번 죽어 봤으면

 

 

 

-출처 : 시집 『아지랑이 만지장서』(만인사, 2012)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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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 엽채 일급의 마음을 찾아서

-김연대의 시 「斷想」을 읽고

 

 이 작품은 시인으로서의 염원을 그린 것이다. 어디에도 거칠 게 없는 호방한 목소리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는 것. 고향은 <그런 시 한 줄> 쓰기 위하여,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을 <그렇게 한 번> 맞이하기 위하여 찾아 들어가는 땅이다. 바깥사람들은 무얼 하러 산골에 들어가느냐 하고, 고향 사람들은 무얼 하러 산골로 들어느냐고 한다. 이 시는 그들의 물음에 대한 시인의 대답이다.

 

 시인이 고향에 들어간 지 삼 년째 접어드는데 그는 아직 <그런 시 한 줄> 쓰지 못 하고 있으며, 아직은 <그렇게 한 번> 죽을 수도 없다는 걸 알고 독백하고 있다.

 

 우학 스님이 시인에게 지어준 법명이 擧海다. 바다를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시인은 스스로 바다를 들어 올릴 만한 기상과 배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이 찾아든 이 땅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저 산봉우리 뿌리째 뽑아/푸른 잉크 찍어 한 백 리> 긋게, <강물 이마에 감고/한 천 리 돌>리게, <바다 복판 털썩 주저앉은 섬/그런 방점 하나/쿡> 찍게 허락할 것이라 믿고 봄을 건너고 있다 한다.

 

 들녘을 헤매다 지쳐 돌아와 보면, 뜰 앞의 매화 한 가지가 자신을 반기고 있다 한다. 달빛 아래 환한 배꽃과 소쩍새 울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지만, 가슴 속으로 사무쳐 오는 깊이와 울림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뜰 앞 매화의 어여쁨과 배꽃의 환한 표정, 소쩍새의 속 깊은 울음을 비롯한 이 산골의 모든 것들은 그래 <아부지하고도 이제 안 싸>운다는 어머니의 음성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시인은 멀리 내다보고 사시는 것 같다. 열정의 한 시절을 접고 낙향하여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깊이를 읽다 보면 누구나 저미기는 마찬가지다.

 

-김연대 시인이 직접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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