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모시고
장석남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는 한가
그저 황혼의 전봇대 그림자가 길고 길 뿐
사납던 이웃집 개도 오늘 하루는 얌전했을 뿐
우연히 생겨난 담 밑 아주까리가
성년이 되니 열매를 맺었다
실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어디 또 그런 데 가서 그 아들 손주가 되겠다
거짓마저도 용서할
맑고 호젓한 가계(家系)
오늘도 드물고 드문 가난을 모신,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
수(壽)와 복(福)의
서걱임
-출처 : 시집『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2012)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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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함과 빈(貧)의 철학
-장석남의 시「가난을 모시고」를 읽고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는 한가”. 시「가난을 모시고」의 시작 부분인데 이 시에서 얻게 된 어휘가 바로 호젓함이다. 장석남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미묘하고도 깊은 서정의 실체를 보다 응집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바로 ‘호젓함’이라 할 수 있다. 해서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는 한가”. 를 “오늘 나는 호젓해야겠다/ 그러나 호젓함이 어디 있기는 한가”. 로 겹쳐 생각하며 이 시집과 이 시를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의 시의 여정이 흩어지는 마음을 호젓함으로 모으고, 때로 그것이 자신을 데려갈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보기로 하는 과정을 거듭 밟고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중요한 것은 이 호젓함의 서정이 장석남 시가 지닌 품격과 절제미, 지혜, 그리고 삶의 지향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난삽해지려는 마음을, 파탄을, 조급과 격정으로 치달으려 하는 통곡의 시간을 천천히 지연시켜 기울어진 주춧돌을 다시 놓아보는 그런 과정으로 그의 호젓함은 세워진다.
이와 같은 호젓함의 서정을 이야기하며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의 시가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품격’에 대해서이다. 우리의 일상처럼 예술 세계가, 아니, 시조차도 얼마나 급격하게 세속화되고 있는가? 나는 우리 시대의 예술이 이러저러한 거친 도발과 과장을 마구잡이로 용인한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장석남 시의 부드러움의 이면에는 세속의 속도와 과잉된 욕망, 그리고 삶의 일천함을 물리치려 하는 모습 속에서 호젓함을 다듬어내려는 용맹정진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모든 ‘철학 하기’는 사유 대상의 대상화로부터 시작한다. 대상화는 거리 두기이며 대상화의 실천은 대상의 재편성이라는 사유 활동에 의해 이룩된다. 이때 이미 낡은 대상은 새로운 의미 부여에 의해 쇄신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 하기’는 일종의 ‘쇄신하기’라 할 수 있다.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는 한가” (「가난을 모시고」)라는 발언에는 가난을 대상화 하고 그것을 쇄신하려는 시인의 의도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삶 속에서, 문학 속에서 ‘가난’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으로 거듭 이야기되어 왔다. 가난은 결핍의 확고한 징표이며 고통을 이야기하는 삶의 끈질긴 내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잉은 진정한 풍요와 다르다.
시「가난을 모시고」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되어 있다. “오늘도 드믈고 드믄 가난을 모신,/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 수(壽)와 복(福)의/ 서걱임“.이다. 시인은 베개의 까맣게 오른 때와 거기에 수놓아진 t와 복의 서걱임을 동시에 본다. 때가 까맣게 오른 수와 복을 베고 누군가는 가난의 무거움을 달랬을 것이다. 여기에는 가난을 베고 누워 수와 복도 함께 누려보는 일말의 여유가 내포되어 있다. 시인은 이러한 가난을 같은 시에서 ”맑고 호젓한 가계(家系)“로 요약한다. 이때 결핍으로서의 가난은 맑음으로 쇄신된다.
장석남에게서 가난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맑음’을 얻기 위한 관념의 노정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가난을 모시는 일은 과잉된 욕망으로 치닫는 세속에 대해 가장 비세속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일 것이다. 다시 말해 ‘가난 모시기’는 결핍을 초래하는 일이 아니라 과잉된 기름기를 걷어내고 넘쳐나는 것을 동여맴으로써 ‘청빈’에 이르는 정신 수양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호젓함은 이 같은 빈(貧)의 철학에 의해 얻어지는 서정이다. 이러한 ‘가난’에 대한 사유는 욕망의 과도함을 덜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정신의 절제와 상통한다.
-문학평론가 엄경희 님이 쓰고 詩하늘이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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