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김경호] 몸 --- 아픈 몸, 현실의 노래

문근영 2013. 8. 8. 14:12

 

 

 

 

김경호

 

 

살아갈수록

상처에 손이 간다

 

손톱이 자라는 동안

왜 손금이 가려운지

새벽녘에 들어보는

늙은 레코드처럼

내 몸은 지지직거리는

유한반복의 날들

 

어제를 견디어 온

저 벽면의

수직의 빗물자국

길게 흘러내리는

새벽

 

살아갈수록

상처가 가렵다

낫지 않는 깨진 상처 위에

푸른 별이 돋는다

 

 

 

-출처 : 시집 『봄날』(두엄, 2012)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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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 현실의 노래

-김경호의 시 「몸」을 읽고

 

 시집 자서에 ‘짧지 않은 세월을 무엇에 쫓기며 살았는지 이제야 옷 한 벌 지으려 드니 내딛는 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시집의 1부는 최근에, 2부는 90년대 이후에, 3부는 80-90년대, 4부는 70년대에 씌어진 것들을 역순으로 묶어본다. 잘 가거라, 내 청춘의 푸른 옹이들이여,’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은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이미 신춘문예에 이름을 올릴 만큼 시에 있어 남다른 기예를 보였다. 소질도 중요하겠지만 시에 대한 열절한 마음이 참 컸으리라 짐작이 된다. 「풀잎 연가 」라는 시와 「비 오는 날 」이라는 시로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학생의 신분으로 일간 신문의 신춘문예에 버젓이 당선작을 올리게 된다. 그는 그렇게 학생문사로 저 지난하고도 쓸쓸한 시업의 길에 한 발을 걸쳐 놓게 된다.

 그렇게 그의 초기 시들은 먼 훗날에 이르러 만나고 직시하는 "몸"의 길을 향하여 언덕을 넘어 간다. 또한 그는 생짜로 점철된 생애의 길목들을 거슬러 오르면서, 그의 시도 함께 따라서 무서리와 안개와 갈대밭처럼 서걱이는 미궁의 노정을 건넌다. 예나 지금이나 시의 길은 험로이며 다시금 드높은 길이다.

 그러니 그의 50여년의 시와 일과 눈물과 가족의 일생을 휘감아 돌아 나온 머언 강줄기의 파랑이 사뭇 궁금해진다. 한 사내의 한 생의 일기가 되어있을 법한 한 권의 시집이라니, 연륜의 골이 깊은 그의 집 마당에 잠시 발을 들여 보기로 한다. 어디선가 동천의 하늘 저쪽으로 기러기 몇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내 안의 환영의 시간 쪽으로 잠시 눈을 감아 보게 된다. 마음을 기울여 누군가의 시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눅눅하고 무겁고 서늘함의 서정이 깃을 치듯이 쳐들어오곤 한다. 오래된 버릇임을 어쩔 수 없다. 되도록 고요히 대하는 것으로 김경호 시인의 시 읽기'에 관한 책무를 다해볼 작정이다. 어쩌면 고요해야만 보여지는 침잠과 침착의 경계에서라야 참답게 느껴지는 게 시의 모습이자 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컴퓨터 창에다 대고 "몸"이라고 한번 쳐보았다. 검색어들을 헤아려 보니 막상 몸은 없고, 몸빼, 몸짱 같은 단어들만 보인다. 합성어들뿐이다. 그렇다면 "몸"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기 좋은 말로 마음을 담은 그릇 정도가 몸이었던가. 아니, 요즈음의 사람들에겐 별스런 닥달의 대상이 되어 굶기고, 굴리고, 내돌려서 남에게 보기 좋도록 가꾸어야만 한다는... 고해와 질시의 대상으로 읽히고는 하는 몸. 전락한 몸. 그리하여 정작으로 실체였을 몸은 영영 사라져 버리고, 어디에도 내 몸은 없고, 죽을 둥 살 둥 닥달하고 다그친 남의 몸 앞에서 군침을 흘리게 되는 몸. 몸만 잘 만들어도 '인간승리'가 된다는 몸. 그러기 위해서 칼과 망치를 들이밀어 뜯어 고치기도 하는 몸. 등급이 매겨져 팔기도 사기도 하는 몸.

 '청년 시인이었던 김경호는 이제 귀밑머리가 희끗해진 자신의 일생이며 지난한 시력의 반생에 이르러서야 내놓는 첫 시집의 맨 앞장머리에 하필이면, 그 무슨 경각심이라도 일깨우려는 듯이 "몸"이라는 시 한 편을 간판처럼 매달아 놓았다. 그 시를 대하는 필자의 마음이 웬지 아프다. 몸이라는 단어가 아프고, 그 내용이 또한 아프다. 자식들이 모두 떠나간 늙은 슬레이트 지붕의 단칸방에 아직도 걸려있는 '가화만사성'의 액자처럼, 이발소 그림처럼.

 그에게, 그의 몸은 상처다. "늙은 레코드 판"이었고, "수직 빗물자국"이었으며, '가려움'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잘난 몸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남에게 드러낼만한 몸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경호 시인이 자신의 몸을 대하는 태도와 코드에서 남다름이 발견되는 지점이 있다. "살아 갈수록/ 상처에 손이 간다"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상처 위에" 별을, 그것도 "푸른 별"을 돋게 하는 대목이다. 대개의 시들은 성찰을 통하여 시적인 외연의 문을 열어젖히거나 넓히는 것이겠지만, 성찰이 또한 너무 작위적이거나 인위적인 모습이었을 때는 어쩐지 가시처럼 목에 걸려서 잘 넘어가지 않는 것이 시행의 운명이다. 그의 시는, 상처의 순간과 그에 관한 토로는 별다른 가식 없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사실은 '나'에게도 있는 몸이었으며, 몸을 몸답게 바라보는 서정 때문일 것이었다. 따라서 몸에 관한 김경호 시인의 성찰은 한사코 자신의 몫이어서, 그는 어쩌면 한낮에도 초록에 휩싸인 한 채의 별집 같은 마음으로 제 길을 걷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어떤 이들은 제 몸을 너무 편파적으로 사랑하거나 집착하여서 거기에 뱀의 대갈통이거나 호랑이 발바닥을 새겨 넣는 경우들도 있었다. 짠한 치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몸은 언제나 마음이거나 눈으로만 바라보아야 할 고독한 경외의 대상이 아닐까. 세월을 잘 못 만나 요즈음 고생하는 몸들이 너무 많은 참에 김경호 시인의 「몸」시는 한참이나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아 주었다.

 김경호 시인의 시편들 대부분에는 화려한 수사나 과도한 장치가 없어 우선적으로 읽기에 편안하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허구가 난무하는 지금의 시단의 세태 속에서, 일견 언어의 진실성에만 기초하여 바라본다면 이런 부분은 한 시인의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어 보인다. 개인적인 일상과 자잘한 바라봄에서 뛰쳐나와 수직을 가늠하는 상승의 언어에 관한 추구. 비상과 차가움을 동반한 솟구쳐 오름과 떨어져 깨지기도 하는 존재에 대하여 바라보는 각성과 성찰. 일상성을 간직한 소재들에 대한 경계들이 향후의 그의 시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리라는 마음을 얹어 본다.

-시인 정윤천이 쓰고 詩하늘이 엮음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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