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한 자루/이성선
-山詩·51
삽 한 자루 벽에 기대 섰다
흙을 어루만져 씨를 묻고
밭을 뒤집어 노을 갈아 밤을 심어
새벽 열고
지금은 묵묵히
몸을 씻은 후 집에 돌아와
벽 앞에 서 있다
적막한 평화로움
나의 손에 부려질 때와는 달리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심히 자기로 돌아가 있다
그러나 저 깊은 손이 어느 날
대지 위에 나를 묻어
하늘로 돌려보내리라
-『이성선 전집』(서정시학, 2011)
삽 한 자루에 대한 뜻 깊은 인생의 관조가 깃어들어 있는 아름다운 시편이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이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또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이는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더 깊이 보고, 더 깊이 느끼는 일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세계를 이야기하고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감성과 인식을 일깨우고, 내면의 영토를 넓혀줄 수 있는 이 그것이 시인일 것이다.
깊이 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은 사물의 표면만이 아니라 그 이면까지를 본다. 그러한 눈은 작은 도토리 한 알에서 아름드리 나무를 미리 볼 수 있는 것처럼, 삽 한 자루의 현상적 작용뿐 아니라, 시간의 폭을 미리 건너뛰어 자신을 묻어줄 삽의 숭고한 미래까지를 본다.
시에 나타난 삽의 현재적 작용을 살펴보면, 삽은 흙을 어루만져 씨를 묻고 밭을 뒤집을 뿐 아니라 노을을 갈고 밤을 심어 새벽을 연다. 삽이 흙과 함께 ‘노을빛’을 갈고 ‘밤’이라는 시간을 흙에 심어 새벽을 여는 것이니 빼어나게 활물변이형 은유를 구사한 것이라 하겠다. 시인의 깨어있는 눈은 흔하디 흔한 삽의 모습 하나에도 이토록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읽어내어 우리의 감성을 자극시킨다.
그렇게 빛과 시간을 갈아 새벽을 열었던 삽은 지금은 몸을 씻고 묵묵히 집에 돌아와 적막한 평화로움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을 시인은 의인법을 써서 ‘벽에 기대 서 있다’와 마찬가지로 ‘무심히 자기로 돌아가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삽은 마치 사물이 아니라 밭에서 일하고 쉬는 말 없고 속내 깊은 일꾼 같다. 그래서 시인은 급기야 ‘저 깊은 손’이 어느 날 대지 위에 나를 묻어 하늘로 돌려보내리라고 예건한다.
시인은, 자신의 일을 마치고 집에서 무심히 자기로 돌아가 쉬고 있는 삽의 모습 속에서 삽의 미래의 역할까지 상상해낸 것이다. 지금은 비록 내 손에 부려지고 있지만, 내 손에 부려지던 그 삽에 나중엔 내가 묻히라는 사실! 이는 삽 한 자루에 대한 인생의 깊은 관조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시정(詩情)의 깊고 따뜻한 눈에 비친 세계일 것이다. 우리는 이 시의 눈을 따라 삽 한 자루에 담긴 인생의 어떤 면모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사물을 보는 눈이 깨어 있는 이는 숨겨져 있던 더 깊은 세계를 보고, 그것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더 깊은 세계를 보는 이는 삶을 대하는 마음의 보폭이나 감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신을 껴안고 누운 밤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돌 하나 품어도
사리가 되었습니다
-<산달(山月)-山詩·20>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섬세한 눈과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정결한 가슴을 가진 이는 무심히 돌 하나를 품어도 사리가 될 것이다. 그것이 시정(詩情)이 지닌 값없는 가치이자 빛나는 연금술일 것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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