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행(雪中行)
신경림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마을이 있고 눈 속에 내가 버린 것들이 모여 있다.
어떤 것들은 반갑다 인사를 하고 어떤 것들은 토라져 외면을 하지만 나는 내가 그것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버렸는 것을 안다.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나도 버려진다. 나로부터 버려지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진다.
이윽고 내가 나로부터 버려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린 것이고 내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버린 것을 알면서.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나는 한없이 행복하다.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마을이 있고, 마침내 내가 버린 것들 속에 나도 섞여 함께 버려진다.
―『詩評』(2013.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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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다시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시집『뿔』(창비, 2002)
―『신경림 시전집 2)』(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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