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조태일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햇볕 하염없이 뛰노는 언덕배기면 어떻고
소나기 쏜살같이 꽂히는 시냇가면 어떠리.
온갖 짐승 제멋에 뛰노는 산속이면 어떻고
노오란 미꾸라지 꾸물대는 진흙밭이면 어떠리.
풀씨가 날아다니다가
멈출 곳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는 길목,
그곳이면 어떠리.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 시집『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창작과비평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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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 바람 · 빛
―국토 11
조태일
물과 물은 소리 없이 만나서
흔적 없이 섞인다.
차가운 대로 혹은 뜨거운 대로 섞인다.
바람과 바람도 소리 없이 만나서
흔적 없이 섞인다.
세찬 대로 혹은 보드라운 대로 섞인다.
빛과 빛도 소리 없이 만나서
흔적 없이 섞인다.
쏜살같이 혹은 느릿느릿 섞인다.
한 핏줄끼리는 그렇게 만나고 섞이는데
한 핏줄의 땅을 딛고서도
사람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구나.
사람이면서 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구나.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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