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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장욱] 금홍아 금홍아*

문근영 2013. 7. 21. 10:57

  금홍아 금홍아*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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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홍아 금홍아 뒤척이는 건 마음일까 그림자일까 네 품에선 세상 어둠이 환해져 어둠의 흰 뼈들이 바스락거리지 금홍아 금홍아 눈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어 누구나 긴 골목 끝에 집 한 채씩 지어두는데 아, 저 언덕배기 내 헐한 창문은 캄캄히 젖어 있네 책보만한 달빛도 안 드는 꽃무늬 방에서 하루 종일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아무리 되뇌어도 나는 한 구의 '에피그램'도 못 얻는데, 금홍아 금홍아 왜 넌 돌아오지 않는 거야?

 

 

  2


  금홍아 금홍아 아침에 눈뜨면 내 몸은 젖은 양말 금홍아 금홍아 머리맡 뒤적이면 딱딱한 방바닥과 재떨이, 담배 연기 올라가는 천장에 피고 지는 누런 꽃잎들과 생각으로 놀고 있으면 어쩐지 금홍아 금홍아 내 오랜 무릉도원 삼십삼번지에 흐르는 화사한 화장품 냄새와 평생을 보내고 싶어 그럴 때나 내 정신은 은화처럼 맑네 위트도 패러독스도 지금 내겐 없으니 금홍아 금홍아아 꿈은 정말 가위 같아 왜 내 목젖이 서늘할까?

 

 

  3

 
  감정은 어떤 포우즈 금홍아 금홍아 마당귀 화단에 잘린 벽돌들 녹슬어 고요한 철대문, 어쩌다 딱딱한 것들과 친해졌는지 '중병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게 옆서를 띄우고 싶어 이십세기와 '짱껭뽕'을 해서라도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 품에 안기고 싶네 하루 종일 내 딱딱한 그림자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에 골몰중인지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 만한 일일 뿐 금홍아 금홍아아 하지만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니?

 

 

  4
  이 맑은 날 금홍아 금홍아 네가 없는 데서 긴 그림자 하나와 저녁을 맞네 빈 곳은 채우려 할수록 자라니까 빈 채로 두고 대문 밖 빈 하늘 바라보면 저것들, 어딘가 떨어지려고 날아가는 솜털 꽃씨들, 굿바이 굿바이 손 흔들며 나도 네게로 가고 싶어 그래도 금홍아 금홍아 너는 노래 부르지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 그런데 금홍아 금홍아아 꿈은 정말 가위 같아 왜 네 목젖이 서늘할까?

 

 


*금홍이는 시인 이상의 애인이다. 상(1910∼1937)과 나(1968∼)의 불편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그의 소설 「날개」「봉별기(逢別記)」「종생기(終生記)」등에서 몇 구절을 차용했다.

 

 

 

(『내 잠 속의 모래산』. 민음사. 2002)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출처 : 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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