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조용숙] 천남성

문근영 2013. 7. 20. 09:57

천남성

 

조용숙

 

 

 어느 날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난 당신은

 내 속에 꼭꼭 숨겨둔 살마키스의 영혼을 불러냈다네

 

 여보세요 당신은 나의 헤르마프로디토스*인가요? 족드리 꽃 옆에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당신. 혹 전생의 연인인가요? 연인이면 전생에서 못 다 이룬 사랑 다시 이어가면 안 될까요? 이 사랑이 저승에서 받아야 될 혹독한 죄의 열매라도 당신만 사랑하고 싶어요. 연인이 아니라도 좋아요. 이승에서 저와 새 인연을 맺으면 안 될가요? 그 죗값으로 사약이라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돌고 돌아 딱 맞는 짝을 찾은 나는 다시는 당신을 잃기 싫었다네 하지만 내 울타리에 가둬 놓은 당신은 틈틈이 반역을 꿈꿨다네 그럴수록 나는 그 누구도 당신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온 동네에 괴소문을 퍼뜨렸다네 이 사람에게는 아주 나쁜 병이 있어요 이 사람 가까이 하면 온몸에 독이 퍼져서 죽어요 그리고 기도했다네 이 사람이 영원히 내 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저와 한 몸이 되게 해주세요

 

 아무도 모르게 나와 한 몸이 된 당신은 내 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라네

 

*파리 루브르미술관에 있는 헤르마프로디토스 조각상에는 상체에는 여성의 젖가슴이, 하체에는 남성의 성기가 달려 있다.

**천남성 : 암꽃 차례가 되어 열매를 맺었다가 이듬해 다시 수꽃을 피우는 암수 양성의 특성을 가진 꽃이다.

 

 

 

 

ㅡ시집『모서리를 접다(詩로여는세상, 2013)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박창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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