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차주일] 환속

문근영 2013. 7. 20. 09:57

환속

 
차주일

 

 

돌부처도 여염에 나들고 싶어 애가 탔던 게지

본디 사내였던 저도 살내가 그리웠던 게지

비손하러 온 과수 훔쳐보려 눈초리를 깊이 숨겼던 게지

비손하는 사내들에게 저를 빌려 주었던 게지

제 어깨너비 포졸에게 몸통을 포개 놓고

붓대 서너 다발쯤 놀려본 선비에게 손 들려 놓고

육자배기깨나 뽑아대는 한량에게 입술 맡겨 놓고

지게 좀 짊어져 본 머슴에게 아랫도리를 넘겨주었던 게지

이놈들이 과수를 겁탈할 때마다

돌부처 여기저기 옴찔옴찔 닳았던 게지

사내놈들 용쓰는 몸짓이 딴 몸인 듯 이상해

과수가 물을 문자 초서체로 허릴 뒤채보았던 게지

사내놈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답하는 걸 눈치채고

보살이 될 때까지 보시해 왔던 게지

돌부처의 풍화는 부처의 잠행 연혁이지

여체에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내의 욕정이지

눈발 사나운 한겨울이면 보게 되지

산사에서 과수댁으로 향한 발자국은

봄바람 불어 대도 돌아간 흔적이 없지

그러면 유난히 늦은 봄눈이 내려

발자국을 감춰주기도 하는데

육정이란 게 상사열병에도 녹지 않는 것이어서

살얼음이 눈꺼풀처럼 감고 뜨기를 되풀이해도

눈동자 깊이로 찍힌 발자국은 그대로 남지

보다 못한 산목련이 석불 발자국 본뜬 꽃잎을 떨어뜨리지

사람들은 산목련의 낙화를 걸음 수로 세지

산사로 돌아가는 돌부처가

사람이 된 제 마음 돌아보는 자리가 돌아올 환자로 휘면

사람의 정분을 재는 길 하나가 남지

자주 돌아보는 자는 기어코 사람으로 불리지

돌부처 앞에서 멈춘 길은 여전히 뒤채고 있지

 

 

 

―『문학·선』(2013. 봄)

 

출처 : 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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