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택의 펜화로 보는 한국
화순 쌍봉사 삼층목탑과 철감선사 부도
펜화가는 항상 새로운 그림소재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한번 그렸던 장소를 다시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화순 쌍봉사(雙峰寺)는 여러 차례 들렀는데도 다시 가보고 싶은 절입니다.
나라 안에 단 하나밖에 없는 목탑다운 목탑인 삼층목탑과 가장 아름다운 부도로 펜화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철감(澈鑑)선사 부도가 있기 때문이지요.
예로부터 중국을 전탑의 나라라 하고 한국을 목탑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벽돌로 거대한 탑을 세울 때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목탑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세계최고의 목조건축 기술을 지닌 우리 조상들은 황룡사 9층 대탑을 비롯한 여러 큰 목탑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모두 소실되었고 임진왜란 후 중건한 법주사 팔상전(八相殿)과 쌍봉사 삼층목탑만 남았습니다. 그중 5층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은 지붕의 넓이가 위로 올라가면서 급격하게 줄어들어 경주 남산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탑이나 우리 선조들이 일본에 세웠다는 목탑의 수직적 구조와는 크게 달라 보입니다.
펜화가가 쌍봉사 삼층목탑에 반한 것은 지붕의 체감율이 적은 수직적 구조로 오래 전에 없어져버린 옛 우리 목탑을 보는 듯해서입니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숙종16년(1690) 두 번째로 중건한 기록이 있는 삼층목탑은 대웅전으로 이용도중 1984년 4월 화재로 소실되어 86년 다시 지었으나 보물 제163호에서는 해제되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1962년 해제 수리 때 발견한 대로 3층 지붕을 팔작지붕에서 사모지붕으로 바꾸고 상륜부를 올려서 탑다워진 것입니다.
1984년 화재 때 동네 농부 한사람이 불길 속에 들어가 불상 3구를 구해 낸 이야기는 쌍봉사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삼층목탑 뒤편 왼쪽 언덕을 올라가면 철감선사 부도와 부도비가 나옵니다.
펜화가가 본 많은 부도 중에 철감선사 부도만큼 아름다운 부도는 보지 못했습니다. 연곡사 동부도가 쌍벽을 이룬다지만 동부도가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형태로 여성적입니다만 철감선사 부도는 팔각원당형 부도 중 가장 완벽한 비례를 갖추고 있고 몸돌의 폭이 넓고 장중하여 남성적입니다.
하대석 하단의 구름사이로 두 마리의 용이 꿈틀대는 조각은 부도가 하늘나라, 즉 불국토임을 상징합니다. 하대석 상단은 팔각으로 각 면마다 사자를 새겼는데 부도의 수호동물이라면 사나워야할 사자들이 뒷다리를 물고 있거나 장난질치는 모습이 강아지처럼 귀엽습니다.
상대석은 연잎이 조각된 둥근 연화대위에 팔각으로 몸돌굄대를 만들었습니다. 몸돌 굄대의 8면에 안상을 만들고 그 안에 비파. 장구 등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를 조각하였습니다. 가릉빈가는 사람의 몸에 새의 날개가 달렸다는 상상의 새인데 목소리가 무척 곱답니다.
몸돌 앞뒤로 자물통이 달린 문비가 조각되어 있어 부도가 큰스님을 모신 집임을 증명하며, 나머지 면에 사천왕과 비천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은 전형적인 신라 목조건축 모양을 본뜬 것입니다. 몸돌의 팔각 귀퉁이마다 배흘림기둥을 세웠고 지붕돌의 처마는 겹처마로 서까래와 부연까지 있습니다.
부도의 모든 조각들은 참으로 섬세하며 아름답습니다. 특히 직경 2cm정도의 지붕돌 수막새 기와에 새겨진 여덟 개의 연잎을 보면 존경심까지 울어납니다. 석질이 연한 대리석도 아닌 화강석에 이렇게 세밀한 조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솜씨와 깊은 불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게 천년이 넘는 세월의 풍상을 겪었으면서도 조각이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국보 제57호로 높이가 2.3m입니다.
철감선사 부도 좌측에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은 철감선사 부도비가 있습니다. 여의주를 입에 문 옹골찬 거북이가 발을 번쩍 들고 힘차게 나가려는 모습입니다. 부도와 함께 만들어진 부도비 또한 조각솜씨가 뛰어난 수작입니다. 이수에는 ‘쌍봉산철감선사탑비명’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보물 제170호입니다.
신라 경문왕 때 철감국사(798-886)가 창건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쌍봉사는 조선시대까지도 큰절이었으나 1900년대 들어서면서 사세가 기울어집니다. 1928년 여러 법당들이 퇴락 하여 더 모시기 어려워진 나한상과 인왕상 등 478구의 각종 불상을 장성의 백양사로 보냈다 하나 아직도 지장전에는 보살상과 시왕상, 인왕상등이 두 줄로 늘어설 만큼 남아있습니다. 조각솜씨도 뛰어나지만 옛것의 소중함을 아는 주지스님의 고집으로 오래된 채색이 그대로 살아 있어 정감이 갑니다.
법당 3채와 작은 요사채 뿐이던 쌍봉사는 근래 들어 중창불사가 이어져 2동의 요사채와 주지실, 종각과 공양간에 호성전을 새로 마련하여 제법 틀이 잡혔습니다. 펜화가가 고마워하는 것은 여러 건물을 지으면서도 본래의 절 분위기에 지장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안목 없는 스님들의 마구잡이 식 불사에 좋은 기까지 죽어버린 절이 어디 한둘이어야지요.
그림.글. : 김영택(펜화가 honginart@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