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김영택의 펜화기행 24- 통도사 범종루와 만세루

문근영 2013. 3. 30. 02:05

제목: 김영택의 펜화기행 24- 통도사 범종루와 만세루
분류: 칼럼
이름: 8.김영택






1930년대의 범종루와 만세루


현재의 범종루와 만세루
난간이 바뀌었고, 단청을 올려 화려해 졌습니다.
법종, 법고, 목어를 하나씩 더 달았고,
아래에 살대를 돌려 출입을 막았습니다.



전면이 창호로 막힌 현재의 만세루


새벽 3시에 법고를 치는 모습
구경하는 관람객이 없는 시간이라 학인스님 여렀이 공부 삼아 함께 칩니다.
ISO를 3200에 놓고
후레쉬 없이 찍었더니 이미지 스테빌라이져 기능이 부족했는지 사진이 떨렸습니다.



저녁에는 스님이 한사람씩 번갈아 가며 칩니다.


목어와 운판을 치는 모습,
옛날에 달았던 범종각이란 현판이 보이지요.



통도사 범종각이 비좁아 범종을 칠 때에는 종두를 여러번 흔들다 마지막에 크게 들었다 내리쳐서 큰 소리를 냅니다.

 

                                                       통도사 범종루와 만세루


    2002년 초부터 1년 7개월 동안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살았습니다.
펜화로 캘린더를 만드는 소임을 맡아 법사실에 살림을 차린 것입니다.
법사실은 통도사 설법전에 법문을 가르치러 외부에서 온 큰 스님이
법문 시간 전에 잠시 머무는 고급 객실입니다.

   바깥 마루방에 냉장고를 놓고 안방에는 문갑과 반다지에 찻상을 갖추어 놓으니
주지실 못지않은 멋진 방이 되었습니다.
전생에 어떤 공덕이 있어 스님도 배정 받을 수 없다는 법사실에 살게 되었을까요? 
기도를 많이 하였다는 스님이
“영산전 팔상탱(八相幀_부처님의 일생을 여덟장의 그림에 담은 불화)을 그린
유성(有誠) 스님이 당신의 전생이었네”라고 하더군요.

   조선 최고의 불화가인 유성스님이 1775년 완성한 통도사 영산전 팔상탱은
보물 제1041호로 색채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에서
불화뿐만 아니라 한국화 중에서도 비교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전생의 화력이 있어 현생에서도 세밀한 펜화를 그리나 봅니다.

   윤회론자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
타임지에도 실렸던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는
3번 이상의 생애에 같은 직업을 갖은 사람은 세계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드가 케이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통도사 법당들을 펜화로 그리면서 만세루(萬歲樓)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만세루는 대웅전 앞마당 반대편에 짓습니다.
마당에서 큰 법회를 할 때 이용하기 위해 앞면 또는 양 측면에 벽체를 만들지 않습니다.
큰 법회 때 비가 오면  만세루 안에 야단법석(野檀法席-실외에 차리는 불단)을 차리기도 합니다.
만세루에는 벽체가 없어야 하는데
통도사 만세루만 4면 모두 벽으로 막혀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궁금증은 얼마 전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서 구한 사진엽서로 해결되었습니다. 
1930년대 까지만 해도 만세루 전면 벽체가 없었던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통도사는 일정 때 대처승들이 살면서 대웅전 구역의 ‘상로전’,
관음전 구역의 ‘중로전’, 영산전 구역의 ‘하로전’이 별도의 살림을 하였답니다.
그 때 하로전 구역 주 법당인 영산전 앞의 만세루는
앞면이 트여있어 큰 행사에 이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구승들이 통도사를 되찾은 후 상로전의 대웅전이 주 법당이 된 후로는
만세루가 제 역할을 할 일이 없어졌고,
그 후 벽을 막고 승방으로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념품 판매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통도사 스님들이 밝히기 싫어하는 사실입니다.
만세루 글씨는 6세 어린이가 썼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사진엽서에 담긴 범종루는 현재의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기둥과 지붕을 받치는 활주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숙종 12년(1686) 수오대사가 세운 범종루는 중수한 기록이 없습니다.
1930년경 찍은 사진의 목재 상태를 보면 초창 때 목재로 보입니다.
현재 범종루에는 난간을 계자각 난간으로 바꾸었고 단청을 칠해 화려해 보입니다.
일만 오천 근짜리 범종을 하나 더 달았고, 법고와 목어도 하나씩 더 달았습니다.
이렇게 범종, 법고, 목어가 2개씩 달린 것을 보고 ‘부자 절은 역시 다르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1년 예산이 100억 원을 넘는 통도사는 부자 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입장료 수입만도 년 10억원에 달한답니다.

 
   범종은 새벽 3시와 오후 6시에 칩니다.
먼저 작은 범종을 치며 지옥을 파하고 중생을 구한다는 염불을 하고,
그 다음 큰 법고를 여러 학인 스님들이 번갈아 두드립니다.
장삼을 펄럭이며 법고를 치는 모습은 보기가 좋습니다.
가장 솜씨가 좋은 고두장의 화려한 솜씨에는 관람객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법고 연주가 끝나면 목어의 맑은 소리가 이어집니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게으름 없이 수행을 하라는 뜻이 담긴 목어는
물속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지요.
목탁이 휴대용 목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어서 구름 모양으로 만든 청동 운판(雲版)을 댕 댕 댕 울려서
하늘을 나는 새들의 생명과 영혼을 제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범종이 깊고 큰소리로 영축산 계곡을 뒤흔듭니다.
범종 소리는 주파수가 낮아서 땅속으로도 멀리 퍼집니다.
절집에 뱀이 없는 이유가 땅속으로 울리는 범종 소리 때문이랍니다.

 
   통도사에 머무는 동안 집보다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좋은 다비장도 있으니 머리 깎고 눌러 살라’는 스님도 있었습니다만
집사람이 알면 그날이 바로 다비장으로 가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2003년 캘린더는 펜화로 만들었고,
2004년 캘린더는 영산전 팔상탱의 훼손된 부분을 컴퓨터로 복원하여 만들었습니다.
현생의 작품과 전생의 작품으로 캘린더를 만들어본 작가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 10월 5일자 중앙일보 칼럼의 글에 내용을 더 보탠것입니다.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