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즈음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 유학을 소개하는 글을 써 왔다. 유학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우리의 정신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상보적인 역할을 하며, 조선시대 오백년 동안은 독점적으로 국가를 지배하는 이념이었다. 조선왕조가 일본에 의하여 멸망되고 해방과 함께 서구의 문화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되며 유학은 부정되고 비판되어 이제는 관심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교문화의 영향 아래 있던 동아시아 지역의 공통된 역사적 현상이자 운명이었다.
지금까지 소개에서 드러나듯 유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고 따르고 있는 서구적 학문과는 자연관과 인간관을 달리할 뿐 아니라 목적과 방법도 달리 한다. 서구적 학문을 유일한 학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유학에 학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유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태동고전연구소(任昌淳 창립, 현재 한림대학교 부설연구소)에서 사서와 삼경을 암송하며 유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현대를 사는 나에게 유학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사고의 대전환이다
유학은 육경과 사서를 경전으로 삼고 있다. 유학의 경전 가운데서 『대학』과 『중용』은 분량도 작아 사람들이 읽을 만하다. 그리고 이 두 책에는 학문으로서의 유학의 방법과 목표가 가장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내용도 서로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함께 읽으면 유학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대학』에서는 “앎을 극진하게 하는 것이 사물에 나아감에 있다”고 하는데 앎을 극진하게 하는 것은 삼강령의 “명덕을 밝힌다(明明德)”의 시작에 속한다. 『중용』에서는 “하늘이 명한 것이 본성이고, 본성에 따르는 것이 도이다”라고 한다. 『대학』의 지선은 중용의 도와 같고 『대학』의 명덕은 『중용』의 본성과 같다. 지선의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본성 곧 명덕을 지닌 인간이 사물과 만나 자신의 본성을 다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인들은 학문을 통하여 대상을 중심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데 습관이 되어 있다. 현대의 학문에서 주체는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주체가 배제되어야만 학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유학은 이와 반대이다. 명덕과 본성이 학문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학문과 삶의 중심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명덕과 본성을 삶과 학문의 중심으로 삼는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고의 대전환이 있어야 맹자가 “학문의 도는 달리 없다. 흩어진 마음을 찾는 것일 따름이다(學問之道無他 求放心已而矣)”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흩어진 마음을 찾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어야 “먼저 큰마음을 세우면 작은 욕망들이 마음을 빼앗지 못한다(先立乎其大者 其小者不能奪也)”는 의미도 알게 된다.
인간의 삶은 밖에서 안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성숙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오감이 열리고 오감에 기초하여 주변세계를 이해하게 되며, 대상적 인식에 습관화되기 쉽다. 대상적 인식이 습관이 되면 현상적 세계를 자연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을 중심으로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모든 생명세계의 전개는 바깥에서 안으로라는 방향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전개됨을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식물은 씨앗 깊이 있는 생명이 주변 환경의 도움을 받아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며 가지를 뻗고 잎을 돋는다.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다시 열매 속에 생명을 간직한다. 사람도 부모의 사랑으로 형성된 씨앗인 세포가 어머니 뱃속에서 10달을 성장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우리의 안에서 생명이 성숙해서 바깥으로 생명을 실현하는 삶을 살게 된다.
태극에서 음양과 오행을 거쳐 만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유학의 자연관과 마음에서 몸으로 몸에서 가정과 국가와 천하로 펼쳐지는 유학의 학문관을 이해하려면 대상세계에 대한 이해를 분석적으로 심화시켜가는 과학적인 자연인식 방법과는 다른 안에서 바깥으로의 전개가 자연과 인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태와 만나면 마음으로 생각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결정이 되면 몸이 그 결정에 따라 실천에 옮긴다.
이러한 삶의 전개 방향은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생명은 안에서 바깥으로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대상적 인식의 방법을 개발하지 않은 모든 생명들도 나름의 조화롭고 이상적인 삶을 잘 살고 있다. 곧, 내면의 통일된 원리에 기초하여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유학 뿐 아니라 노장 사상 그리고 힌두교와 불교 등 동양의 사상은 공통적으로 안에서 바깥으로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는 유사한 패턴을 지니고 있다. 동양의 이와 같은 학문은 서구의 관념론 철학과는 다른 경험과 체험에 기초한 수양의 학문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