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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벨상의 계절 [송재소]

문근영 2012. 12. 23. 08:57

 

제 629 호
노벨상의 계절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주자(朱子)는 유학의 경전인 『대학(大學)』을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으로 정리했다.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至於至善)이고,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이것은 유학의 이상적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순서에 따라 밝힌 글이다. 삼강령, 팔조목에 대해서는 후대에 무수한 논란이 있어 왔지만 이 중 팔조목에 대한 다산(茶山)의 해석이 흥미롭다. 다산은 팔조목 중에서 성의, 정심, 수신을 먼저 해야 할 본(本)이라 하고 제가, 치국, 평천하를 나중에 이루어지는 말(末)이라고 했다. 그리고 격물, 치지는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보았다. 개인이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수양을 한 후에라야 집안을 거느리고 국가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노벨상 수상 배경에는 지속적인 투자가 있었다

『대학』의 이 구절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해마다 이맘때면 발표되는 노벨상 수상자 때문이다. 금년에도 일본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일본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16명의 노벨 수상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2백 수십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이야 그렇다 치고라도, 우리보다 별반 뛰어날 것도 없는 일본이 16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한 명의 수상자도 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배가 아프다’. 그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기초과학이 튼튼하지 못한 데에 근본적 원인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은 GDP의 2%를 기초과학 연구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고 한다. 이러한 투자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른바 학부제의 전면적 실시 이후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을 외면하고 응용과학 분야에만 몰린다고 한다. 교육당국에서는 ‘수요자 중심 교육’의 원칙에 따라 이러한 현상을 방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초가 든든하지 못한 응용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기초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초기 그림은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이렇게 회화의 기본을 충분히 습득했기 때문에 그가 대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래의 경우에도 기본적인 발성법을 터득해야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요란한 율동을 앞세워 가사 전달도 제대로 안 되는 노래를 부르는 이른바 K-Pop 가수들의 인기가 아무리 높다 해도 이들의 인기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운동경기는 어떠한가? 모든 운동경기의 기본은 육상이다. 야구나 농구나 축구는 육상을 기본으로 한 응용경기라 할 수 있다. 육상의 기본기를 갖추지 못하면 응용경기에서 크게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인문과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철학, 문학, 경제학, 어학 등의 기초학문이 부실한 가운데에서 위대한 사상가가 나오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경영학 등 응용학문의 발전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초학문 육성에 대한 그 해법과 묘안은…

이제 우리도 학문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기초학문에 대한 정부 당국의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원 방식과 연구업적 평가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기초학문의 성과는 단시일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진득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는 것이 기초학문의 속성이다. 지금과 같이 1년 단위로 업적을 평가하여 단기성과를 강요해서는 기초학문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초학문의 총체적 부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학』에서 말했듯 본(本)이 먼저 확립되어야 말(末)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本)이 어지럽고서 말(末)이 다스려지는 법은 없을 것이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라는 『대학』의 구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학문에 비유하자면 본은 기초과학이고 말은 응용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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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송재소

· 성균관대 명예교수
· 다산연구소 이사
· 퇴계학연구원 부원장
· 실시학사 이사
· 순암기념사업회 회장

· 저서 : 『다산시선』(역주)
『다산시 연구』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한국한문학의 사상적 지평』
『한국한시 작가열전』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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