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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한창이던 지난주, 우리는 중국의 호남성을 찾았습니다. 장사(長沙)는 바로 호남성의 성도(省都)였고, 상강(湘江)이라는 크고 긴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이자 강변의 곳곳에는 중국의 학술과 문화가 연결되는 수많은 유적지와 명인들의 자취가 가득 남아 있었습니다. 더구나 중국의 학술과 문화에 정통한 전문가를 따라간 여행이어서, 우리 일행은 동양의 학술과 문화에 흠뻑 젖었고 동정호와 악양루를 관람하고 모택동의 유적지도 살폈습니다. 역사책에서만 들었던 천하의 의인(義人)이자 대문장가이던 굴원의 유적지를 돌아봤고 굴원을 애도했던 정치개혁가이자 대문호이던 가의의 자취도 찾았습니다.
상강의 강변에는 ‘두보강거(杜甫江居)’라는 우람한 건물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은 두보가 살았던 옛집이었고, 거기서 멀지 않은 평강(平江)에는 두보의 묘소가 있어 그곳에 가서 술을 따르며 참배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산의 글을 읽으며 다산 평생에 가장 잊지 못했던 분이 굴원과 가의였으며, 두보는 다산이 시성(詩聖)으로 모셨던 분이어서 기억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상수적객굴선생(湘水謫客屈先生)」의 화상에 바친 화상찬(畵像讚)을 읽어보면 다산의 뜻이 그대로 들어납니다.
밝고 밝게 나라운세 통찰하고 / 明炳國幾 지혜는 하늘의 진심을 꿰뚫었네 / 知達天衷 해와 달도 견주지 못하던 그 밝음 / 日月其晦 흙비가 자욱하게 가려 버렸네 / 霾雨濛濛 ……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 周流八極 어리석은 중생(衆生)들을 흘겨보았네 / 睥睨群蒙 현묘(玄妙)한 그분의 문장 / 玄妙之文 근원은 노자(老子)로부터 나왔다네 / 源出苦翁
그런 지혜, 그런 문장의 대가가 참소하는 무리들 때문에 수천리 먼먼 장사로 귀양 와서 끝내는 돌을 안고 상강의 줄기 멱라(汨羅)강에서 투신자살하였으니, 다산이 왜 그의 원통함에 울분을 토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굴원의 묘소에 참배하고 술을 따라 올렸으며 그의 사당을 두루 살피며, 다산의 귀양살이와 억울한 일생에 분노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사적객가선생(長沙謫客賈先生)」이라는 제목으로 가의의 화상에 찬사를 올린 다산의 글은 더욱 자신을 빗댄 글이어서 가슴이 저렸습니다.
화려하고 찬란한 그 문장 / 黼亞其文 덕망 높은데 영험한 관찰력 / 蓍蔡其靈 뛰어난 식견(識見)으로 / 超悟之識 형태 없는 것까지 면밀히 보았네 / 妙視無形 은나라 주나라의 아름다운 정치에 / 殷輅周冕 요순(堯舜)의 법과 제도를 펼쳐서 / 堯章舜刑 진(秦)의 잔재도 소탕할 능력에 / 力盪嬴滓 기개(氣槪)까지 뱃속에 가득 찼건만 / 滿腹風霆 세상은 결코 믿어주지 않아서 / 衆莫予信 천년토록 눈감고 계신다네 / 千載冥冥
굴원(BC.343-289)이야 50이라도 넘기고 세상을 떠났으나 가의(BC.201-169)는 겨우 33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런 능력과 그런 문장을 가슴에 담고 참소에 걸려 귀양살이로 생애를 마쳤으니, 어쩌면 그렇게도 다산과 닮았을까요. 그래서 다산은 그들의 생애를 한없이 슬퍼했을 것 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그들, 그래도 역사는 그들이 옳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것이 춘추필법입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