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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름다운 가풍을 이어가려면 [금장태]

문근영 2012. 12. 27. 07:40

김찬회<kimivo@naver.com>

제 251 호
아름다운 가풍을 이어가려면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가을이 저물어 가면 화려하게 불붙던 단풍잎이거나 누추하게 시들어가던 잎새거나 모두 흩날려 땅에 뒹굴기 마련이다. 그래도 낙엽들은 새봄이 오면 그 가지에 자기를 닮은 잎들이 무성하게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서 떨어지지 않을까? 사람도 늙어 가면 자기 평생을 마무리하면서 자식들을 돌아보게 되나보다. 그래서 늙은이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방법을 고심하는 것 같다. 자신은 온갖 고생을 견디면서 어렵게 재산을 모았지만, 자기 자식들은 고생 않고 편히 살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부모야 재산을 자손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 재물 때문에 도리어 자손들이 불화하게 되는 경우가 예나 이제나 허다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명심보감에서도 “명성을 얻으려 힘쓰는 자는 자기 한 몸을 죽이고 재물이 많은 자는 자기 자손을 죽인다”는 구절을 수록하여, 재물이 자손들을 불화하게 하거나, 방탕하여 향락에 빠지게 하는 위험을 깊이 경계하였던 것이리라.

가장 큰 효도는 부모의 뜻을 이어가는 것

부모가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분명 재물보다 더 크고 소중한 일들이 있다. 형제간에 화합함은 물론이요, 자손을 반듯하게 잘 가르쳐 집안의 가풍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모의 뜻을 이어가 가풍을 아름답고 융성하게 일으키는 일이 부모의 몸을 잘 봉양하는 일보다 더 큰 효도일 것이다. 옛날의 부모들은 자손들이 대대로 내려가면서 자신과 조상의 뜻을 받들어 가리라는 믿음을 가진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 믿음이 무너져 자식도 제 뜻대로 살 것인데, 하물며 손자나 그 다음 대로 내려가면서 조상의 뜻을 생각해보기라도 할지 믿음을 잃고 말았나 보다.

우공(愚公)은 자손이야 무궁하게 이어가지만 산이야 유한하니 아무리 큰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는 믿음을 밝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신화를 남겼다. 그러나 오늘에는 자손의 자손은커녕 자기 자식도 자기 뜻을 이어주리라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래서 과연 오늘날 우리의 영혼이 더 평안하고 행복하게 되었는지 한번쯤 다시 물어보고 싶어진다.

우리가 변혁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우리 전통의 가치를 너무 쉽게 내다버린 것은 아닌지. 지금도 우리는 옛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롭게 계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지금까지 가진 것을 모두 내다버리고 다 바꾸어 새로 시작해보고 싶다는 강박감에 빠져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이제 우리도 부모와 조상의 뜻을 생각하고 우리 가정의 가풍을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량완 교수가 백 년 전에 살다간 학자 이건승(耕齋 李建昇)의 저술을 번역하고 해설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⑸를 읽다가 한 집안의 가풍이 어떻게 아름답게 이어가는지를 새삼스럽게 느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건승의 가문에는 조선후기의 우리 문화와 정신을 밝혀준 탁월한 인물들이 참으로 많지만, 그 중에 이건승의 조부로 이조판서를 지낸 이시원(李是遠)은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늙어서 적과 싸울 수 없으니 죽어서 여귀(厲鬼: 惡鬼)가 되어 원수를 갚겠노라 하며, 음독자결을 하였다. 이때 아우 이지원(李止遠)은 형님이 죽어서 여귀가 되어 적을 치러 나갈 때 자기도 말고삐를 잡고 따라 나가겠노라 하며 뒤따라 자결하였다. 이렇게 형제가 한 마음으로 나라의 위기를 만나 함께 죽을 수 있었던 사실은 그 의리정신도 장하지만, 형제 사이에 우애가 깊음을 넘어서 서로 한 마음을 이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형과 아우의 우애는 가풍을… 사랑과 신뢰는 학풍을…

또한 이건승은 나라가 망하자 만주에 망명생활을 하면서 재종제인 이건방(蘭谷 李建芳)에게 지어 보낸 시에서, “얼굴 못 본지도 삼년이니, 사람 못 견디게 하네 그려/ 꿈속에선 연달아 낯익은 길만 더듬으니/ 편지 속엔 슬프고 슬퍼라, 살뜰한 정만 보겠군/…글쎄! 나와 같이 아름다운 이웃이 되지 않으련?”(「寄春世」)이라 읊었다. 나라 잃고 망명객이 된 처지이니, 사랑하는 아우 이건방과 함께 어울리던 고향 땅을 꿈속에서 그리워하고, 멀리 떠난 재종형을 안타깝게 그리워하는 편지를 읽으며 가슴에 밀려오는 그 절절한 정에 눈물을 삼키는 모습이 비쳐진다. 우리는 종(사촌)형제도 자주 만나기 어렵고, 재종(육촌)형제는 연락도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흔한데, 재종형제 사이에서 친형제에서도 보기 드문 깊은 우애를 보여준다. 같은 증조부의 자손 사이에 이런 우애라면 한 집안에 아름다운 가풍을 이루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 믿어진다.

이건방의 제자가 바로 일제시대 국학연구를 이끌어갔던 큰 학자인 정인보(爲堂 鄭寅普)이다. 이건승은 재종제 이건방의 제자인 정인보를 자신의 제자로 사랑하였다. 정인보가 사진과 시를 망명지 만주 땅 압록강가로 부쳐 보내자, 이건승은 그 반가움을 시로 읊었다. “물가 달빛 아래, 너의 사진/ 어렵사리 날 찾아 왔구나, 압록강가로/ 따라온 시 편지, 바로 자네 목소리네/ 이 늙은 자네 벗 어리석은 정에는, 너무도 정말 진짜만 같아.”(「景施游湖南…」) 젊은 제자의 사진과 시를 받고 그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 기뻐서 뛰어올라 손을 마주잡아보려 할 만큼 반가워하고 있다. 이건승은 젊은 제자 정인보에게 자신을 ‘늙은 자네 벗’(老友)이라 일컬으며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의 문하에서는 어찌 스승의 학문을 이어가고 발전시켜 가서 학풍을 이루어 학파로 키워 갈 수 있을 것이다.

묘목의 뿌리를 뽑아내고 또 새로운 묘목을 심기를 계속하듯이 바꾸는 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형과 아우가 서로 우애로 화합하여 가풍을 이어가고, 스승과 제자가 서로 사랑과 신뢰로 결합하여 학풍을 이어가면서 큰 나무로 키워가는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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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2005
『다산 실학 탐구』,소학사, 2001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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