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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어갑니다. 노오랗게 여물어가는 벼논에는 수확이 한창인데 초목에는 단풍이 들면서 헌사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홍황점철(紅黃點綴)이라더니 붉고 노오란 잎새들이 흔들거릴 때, 하늘은 높고 푸르며 강물은 깊고 파래 “가을의 강물과 높은 하늘은 색깔로 함께 푸르네(秋水共長天一色)”라던 옛 시구가 떠오르는 그런 시절입니다. 청징한 하늘의 빛깔이 너무 좋아, 방안에 앉아 고서(古書)나 뒤적이기에는 궁둥이가 편안하지 못하기만 합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 우리 다산연구소도 이런 저런 일들을 정리하며 한해의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금년이 다산 탄생 250주년, 그를 기념하여 우리는 제법 보람 있는 일들을 펼쳤습니다. 학술대회도 갖고, 기행(紀行)으로 유적지도 살폈으며, 다산 음악회도 열고 ‘판소리 다산전(茶山傳)’의 공연도 열어 다방면으로 다산과 가까이 하는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깊어가는 가을에는 특별한 다산과의 만남을 준비하였으니, 그게 바로 다산의 시와 글을 서예로 작품화하여 전시하는 전람회입니다. 출판사 한길사와 우리 연구소가 공동으로 준비한 전람회에는 현존하는 서예 대가 9명이 혼신의 노력으로 작품을 만들어 다산이 서예로 우리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민심서』의 핵심적인 글귀나 의미 깊은 문장을 비롯하여, 다산 시의 백미에 가까운 명시들을 골라 다양한 서체로 전시된 작품에는 다산의 혼이 잠겨 있는 듯하여 여러 생각이 일어나게 해줍니다. 「여유당기(與猶堂記)」라는 장문의 글은 자신의 당호인 「여유당」에 대한 해설인데 그 글에는 바로 다산이 일생을 살아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시민여상(視民如傷)」이라는 『목민심서』의 글귀에는 통치자라면 불쌍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마치 그들이 상처를 입은 사람으로 여겨 약을 발라주고 보호해주는 그런 마음으로 백성들을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다산의 백성 사랑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애절양(哀絶陽)」이라는 다산시의 최고봉까지 기막힌 글씨로 멋지게 작품화한 것을 보면, 활자로 된 시나 글이 서예라는 예술과 만났을 때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청랑한 가을에, 가족들이 손을 잡고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을 찾아가 다산의 핵심적인 사상이나 시문을 서예라는 예술로 만나보면 어떨까요. 「탐진촌요(耽津村謠)」라는 길고 긴 다산의 연작시를 정갈하게 쓴 글씨를 읽으며 귀양 사는 죄인이 본 18세기 후반의 탐진(강진)이라는 바닷가 마을의 풍속과 인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으니, 거기서 느끼는 다산의 감회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전달되어 그 시절의 시골 풍물과 세속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영암과 강진 사이의 월출산 모습이 자신의 고향에서 가까운 도봉산 모습과 거의 비슷하니, 월출산 바라보면 도봉산 생각나고, 도봉산 생각하면 고향생각에 가슴이 쓰리니 월출산일랑 바라보지 말자던 다산의 사향(思鄕)의 마음이 이 가을을 더욱 슬프게도 해줍니다.
(전람기간 : 10월13일 ~ 11월18일, 장소 : 헤이리 북하우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