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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살아 숨쉬는 터키 궁전 [조상호]

문근영 2012. 6. 29. 07:23

제 594 호
살아 숨쉬는 터키 궁전
조 상 호 (출판인)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아야지 하면서도 시속의 일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애써 욕망을 잠재웠던 곳이 있다. 우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그곳이 소개되기라도 하면 질화로의 불씨처럼 되살아나는 가고 싶은 그리움의 갈증이 인다.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기에 일상의 무게를 떨쳐내지 못하는가 하는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동서양의 접점이며 중국 시안까지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된 곳, 보스포루스 해협,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의 의미를 찾아보고 싶은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후예 터키가 그곳이었다.

금년 5월 서울에서 열릴 터키 문화유산 교류전을 준비하는 국립박물관의 조사팀에 합류하는 행운을 얻은 것은 작년 10월 말이었다. 그때 터진 터키 지진 뉴스로 걱정되기도 했지만, 한반도의 4배 가까운 크기여서인지 이스탄불에서는 동쪽 끝 시리아 접경에서 일어난 지진이 일상처럼 무덤덤한 것 같았다. 올리브유 생산이 주된 농업국으로 천혜의 자연혜택을 누리지만 지진은 항상 껴안고 살 수밖에 없는 원죄같은 것이다.

동서양 문화의 보고 터키 속으로

5세기 로마제국 멸망 후 콘스탄티노플에 자리를 튼 소피아 성당은 동로마제국의 6세기에 세워진, 제국의 전성기를 드러내는 로마식 기념비이다. 로마 가톨릭이 신에게 바치는 자존심이었고 온 세상에 떨친 화려함의 극치였다. 직경 30미터 높이 55미터의 웅장한 중앙 돔은 세계최대 규모로 2,300평의 대성당을 기둥 하나없이 성전으로 받혀주는,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경건함 그 자체였다. 수차례 지진을 견뎌냈고 1천 년이 지나 이슬람의 손에 들어간 뒤에는 종교적 차이 하나만으로 회칠된 황금 모자이크 벽화는 회반죽이 떨어져 나간 틈으로 간간이 드러나는 화려함만으로도 사람들을 압도한다. 특별기법의 모자이크여서인지 벽화 속 그리스도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나를 뒤좇는다. 이슬람 세계를 공격하기 위한 11세기 십자군 전쟁은 이 성당을 지나가면서 시작된다. 그 주체가 로마에서 미국·이스라엘로 바뀌고, 원유확보나 테러방지라는 대의명분만 달리 표현할 뿐 1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전쟁은 현재진행형인지 모른다.

13세기 말부터 400년간 세상을 뒤흔들었던 오스만 투르크제국은 1453년 이슬람 세계의 중심에 알 박혀 있는 로마가톨릭의 동쪽 끝 천혜의 요새이자 상징인 3중의 성벽에 둘러싸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동로마제국의 숨통을 끊는다. 그 자리에 이슬람의 이스탄불을 건설한다. ‘로마인’으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안타까워하는 것도 기실은 가톨릭의 시각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팍스로마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계를 제패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노마드 정신으로 바람의 제국이란 이름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 별로 없지만, 오스만의 투르크제국이 거대한 석조물로 그들의 표상을 남긴 것은 종교전쟁에서 승리한 욕망의 정치적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그 승리의 자리에 바티칸의 두 배 크기인 21만 평 규모의 톱카프 궁전을 지어 제국의 수도로 삼는다. 이제는 개방된 제국의 보물창고에는 주위에 49개의 조그만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무려 86캐럿의 초대형 다이아몬드, 6,666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황금촛대, 2만5천 개의 진주로 장식한 황금 도금된 왕좌, 왕자의 황금요람 등이 제국의 영광을 노래한다. 3,4백 년 살아남은 거목의 숲길 사이로 세계 각국에서 온 크루즈여행객 3,4천 명이 관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볼수록 아름답고 경의로운 터키의 이모저모

17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와 접전을 벌이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지중해를 지배한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에 조성된 술탄 아흐멧 광장에는 이집트 정복을 기념하여 룩소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하고, 소피아 성당보다 큰 사원 복합단지인 블루모스크가 6개의 거대한 첨탑과 함께 이슬람의 종주국임을 웅변한다. 지금도 예배를 드리는 이 모스코는 직경 23미터의 중앙 돔이 43미터의 하늘에 걸려 우아함을 뽐내고, 내부는 이즈텍에서 가져온 튤립, 포도, 석류 등이 청색으로 디자인 된 2만 개가 넘는 명품 타일로 덮혔으며, 바닥에 깔린 거대한 실크카페트가 성소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된 함무라비 법전의 점토판과 8만 점의 설형문자판과 뚜렷한 부조가 돋보이는 알렉산더 대왕의 거대한 석관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 현장에 온 듯한 환희를 느꼈다.

유럽의 신흥 해양세력에 밀리던 오스만제국이 그 위엄을 세우려고 몸부림친 마지막 불꽃이 1856년 보스포루스 해변에 완공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돌마바체 궁전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버킹검 궁전을 능가하려고 8만3천 평의 부지에 웅장한 술탄의 문과 285개의 방, 43개의 연회실을 갖추었다. 화려한 실크카페트가 깔린 550평 규모의 그랜드 홀에는 45미터의 천장에 걸린 4.5톤의 샹들리에가 750개의 촛대를 꽂고 그 위용을 자랑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선물이라 한다.

1922년 공화정의 시대를 연 ‘터키의 아버지’ 케말 파샤(장군)가 앙카라에 수도를 정했지만 이 궁전에서 집무를 보기도 했다. 대제국의 후예인 그가 꿈꾸었던 공화국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그 집무실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유럽, 중국에서 들여온 온갖 자기와 일상 가구, 장식품, 1,400개 유리창문의 화려한 커튼들이 어우러져 궁전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이들처럼 우리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화국 집무실이 일제 잔재인 조선총독부를 역사에서 지워낸 경복궁 근정전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소박한 상념들이 햇살 좋은 늦가을의 지중해를 향한 파도에 부서지고 있었다. 문득 눈을 들면 무슨 국경일이었는지 크림슨색 빨간 바탕에 노란 초승달과 별 하나가 박힌 터키 국기가 이스탄불의 하늘을 덮으며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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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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