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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처럼 일부의 변화가 전체를 새롭게 할 수 있다. 이전의 낡은 것도 약간의 변화에 의해 완연히 새로워질 수 있다. 스포츠에서 이런 사례는 많다. 감독이 새로운 선수 두어 명을 추가하고 포지션을 약간만 바꾸어도, 팀은 전혀 새로운 팀으로 거듭날 수 있다. 과거 히딩크 축구도 그 일례였다.
올해는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판의 각 팀들이 부산하다.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쏟아진다. 그만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정치도 새로워질 수 없을까?
집권 여당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것을 보면, 집권기간에 대해 스스로 낮게 평가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겠다. 야당이 ‘민주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꾼 것을 보면, 야권이 통합만 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겠다. 두 당의 행태에서 민심의 향방을 엿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새로운 정치, 통합의 정치를 바란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름만 살짝 바꾸어 새로울 수 있다면 더 말할 게 뭐 있겠나. 당명에 통합을 넣어 통합을 달성할 수 있다면 어려울 게 뭐 있겠나. 새로운 정치는 정당이 새로워진 데서 비롯된다. 정당의 새로움은 새로운 선수가 추가되고 진용이 새롭게 재구성될 때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정당들은 과연 새로워졌는가?
과거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서두른 것은 정치전략상 통합에 마이너스였다. 경제학의 기본 내용인 비교우위론에 입각해볼 때, 양국이 전체적으로 상호이익인가를 따지기 전에 당장 이익 보는 사람들과 손해 보는 사람들로 나뉜다. 요즘 상황으로는 대체로 경제적 강자가 이익을 보고, 경제적 약자가 손해를 본다.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약자는 정부를 믿기 어렵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국익을 말하거나 개방을 통해 개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