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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도 열흘이 넘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동장군이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 없고 다가오는 새봄을 거역할 수도 없습니다. 바야흐로 총선국면이 가까워지면서 세상은 아수라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오는 세월 자연의 섭리야 막을 방도가 없지만,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파간의 싸움판은 막지 못하고 왜 이렇게 세상은 소란하기만 합니까. 기존의 여야 당파로 싸우는 것도 시끄러운데 총선을 맞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정당들까지 가세하면서, 공천자와 낙천자의 희비가 엇갈리고 정파 내의 파당이 노골화되면서 친박이나 친노로 갈리는 등, 싸움판은 점입가경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당이나 파당 싸움도 가관인데 진보와 보수의 다툼에다 노사가 싸우고 남북이 으르렁대며 조용한 날이 없으니,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아수라장의 세상이 조용해지고 안온해질까요.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주(周)하되 비(比)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비하되 주하지 못하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라고 하여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말하면서, 비한 소인이 줄고 주한 군자가 많은 세상이어야만 조용하고 안온한 세상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와 비의 뜻을 밝혀야만 해결의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주자(朱子)는 주란 보편(普遍)을 뜻하고 비는 편당(偏黨)의 뜻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산도 그에 동조하면서 더 치밀하고 분명하게 해석을 내립니다. “주는 밀접함이며 비는 함께함이니, 모두 친근함의 명칭이다. 그러나 밀접함은 정신적인 측면으로 말하고, 함께함이란 세력으로 말함이다. 군자는 덕을 함께하는 사람을 벗하니 언제나 마음과 정신으로 친밀하게 지내지 세력으로 묶어 지내지 않으며, 소인은 세리(勢利)로 교제하니 늘 힘을 합하여 파당만 만들 뿐 정신과 의리로 친분을 다하지 않는다. 이게 둘의 차이다” (『논어고금주』卷一)라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주는 공(公)이요 비는 사(私)여서 군자는 공익을 위해서만 마음과 정신으로 결속하므로 참다운 친밀감을 유지하지만, 소인들은 사리(私利)만 앞세워 힘의 과시를 위해 외형적인 파당을 만드니 정신적인 친밀함은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민주주의의 참뜻을 구현하겠다는 정당이 내부의 계파별로 나뉘면서 파당만 보이고 정당은 사라지니 오늘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고경(古經)의 진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익을 위해 존재해야 할 정당이 사익을 위하는 편당으로 분열되어 소란만 피운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칭 애국자라면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외치며 공천 받기 원하는 정치인들, 공익만을 위하는 군자들의 태도인 ‘주이불비(周而不比)’로 돌아가, 아수라장의 갈등구조를 해소하고 공명정대한 선거국면이 돌아오게 해주면 어떨까요. 친박계다, 친노계다하는 사(私)를 넘어 공당(公黨)의 진면목이 살아나기를 기대해봅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