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사고 삼문
적상산 실록각
적상산 선원각
현 적상산 안국사 천불전은 구 선원각
적상산성
2010년 4월 4일 적상산 올라가는길의 고드름
적상산사고 양수 발전소 상부댐적상호
적상산사고 양수 발전소 하부댐무주호
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향적봉
적상산사고지유구(赤裳山史庫址遺構)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117-5
사고를 보관한 곳으로 사고(史庫)는 조선 왕조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곳이다.
적상산은 해발 1,034m의 명산으로 안국사의 동남쪽에 적산산성 사고지유구가 위치하고 있다.
사고가 있던 본래 자리는 1992년 양수발전소 상부댐 축조로 물에 잠기게 되자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선원각과 실록각 두 건물이 복원됐다.
임진왜란(1592) 때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 적상산에 사고(史庫)가 설치된 것은
광해군 6년(1614년)의 일로서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 (全州史庫)에 보관 중이던 실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소되자
선조(宣祖)가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 3부를 더 인쇄하여 전주본 원본과 교정인쇄본을 합쳐
실록 5부를 만들어 춘추관(春秋館), 마니산(摩尼山), 태백산(太白山), 묘향산(妙香山), 오대산(五臺山)에 각각 1부씩 분치(分置)하였다.
그런데 이 중 묘향산본은 북방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어 사고관리에 어려움이 있자 광해군 6년(1614년)에
실록전(實綠殿)을 적상산에 건립한 뒤, 광해군 10년(1618년)에 묘향산 사고의 실록 일부가 옮겨졌다.
나머지는 인조 11년(1633년)에 모두 적상산 사고로 옮겼다.
그 후 인조 19년(1641년)에 이곳에 선원각(璿源閣)을 건립하고『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함으로서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적상산 사고에는 1910년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실록 824책, 선원록, 1,446책, 의궤(儀軌) 260책, 잡서 2,984책으로 총 5,515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서책들은 1910년 이후 일제에 의하여 장서각(壯書閣)으로 옮겨졌다가 6.25 당시 부산 동래로 대피시켰는데,
그 후 실록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고에 관계되는 건물들을 『적성지(赤城誌)』를 통해 살펴보면
사고 열두 칸, 선원간 여섯 칸, 수사당(守史堂) 여섯 칸, 승장청(僧將廳) 여섯 칸, 군기고(軍器庫) 일곱 칸,
화약고(火藥庫) 한 칸으로서 수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나, 이들 건물들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선원각의 건물은 현재 안국사의 천불전(千佛殿)으로 개수되어 현존하고 있을 뿐이다.
일제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물을 서울 규장각으로 옮기면서 적상산사고는 1911년 폐쇄된다.
이후 적상산 사고본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북한으로 반출돼 현재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積善必有餘慶: 적선하면 반드시 경사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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