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뿔뿔이 흩어진 유물 모아 다산학문 ‘숨은 맥’ 짚다. 정민의 《다산의 재발견》

문근영 2012. 3. 31. 09:03

뿔뿔이 흩어진 유물 모아 다산학문 ‘숨은 맥’ 짚다

발품 팔며 친필·그림 모아
‘인간 다산’의 모습 재구성
개성·수준에 맞는 교육 눈길
논문집이지만 이야기 술술

 

» 다산의 재발견 정민 지음/휴머니스트·4만3000원
“다산 친필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어디든 찾아갔다. …손에 못 넣으면 안절부절 몸이 달았다. 곁에서 보다 못한 아내가 혀를 찼다. 도도하던 사람이 자료 앞에선 왜 그렇게 속도 없이 비굴해지느냐고, 보기 민망하다고 나무랐다. 그런 소리를 들은 다음날도 친필 편지 한장이 나왔다는 소식에 하던 일 비켜두고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머릿말)

<다산의 재발견>은 오랫동안 다산 정약용을 연구해온 정민 한양대 교수가 강진 유배기(1801~1818) 다산의 다양한 글을 발굴해 쓴 20여편의 논문 모음이다. ‘다산 전문기자’ 정민이 발로 뛰어 쓴 특종 기사들과도 같다.

다산의 저작은 후손에 의해 1934년에서 1938년에 걸쳐 154권 76책 <여유당전서>로 집대성됐다. 1970년 <여유당전서보유> 5책이 추가되었다. 지금까지 70여년에 걸쳐 정인보, 김상기, 이가원, 이우성, 김영호, 이을호, 박석무 등 쟁쟁한 이들이 ‘다산 광산’을 캐들어가 웬만한 맥은 다 짚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빠진 것들도 있다. 문집을 간행할 때 다산의 저작들을 총망라하지만, 사사로운 것 빼고 덜고, 민감한 것 빼고 덜고, 누가 될 것 빼고 덜어내는 편집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정 교수의 새 책 <다산의 재발견>은 전작 <다산선생 지식경영법>(2006)처럼 앞선 다산 연구자들이 눈길 주지 않았던 남은 자료에서 다산의 새로운 면모들을 찾아낸 책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산의 개인적인 친필 유묵들 속에서 ‘인간 다산과 제자들’의 면모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실로 지난했다고 한다. 대부분 한자 필기체인 초서로 쓴 것이어서 이를 판독해 정자로 옮기는 ‘탈초’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고, 수많은 자료의 구석구석에 따로 박혀 있는 다산의 사유를 잇고 묶어 하나의 흐름으로 잡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 다산이 제자 초의를 시켜 그리게 한 <다산도>.(왼쪽) 다산이 늘그막에 후실한테서 얻은 딸 홍임을 염두에 두고 그린 매조도.

 

이 책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다산의 제자교육 방식’과 ‘다산초당의 경영과 공간구성’ 논문이다. 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다산은 제자의 단계와 수준에 따라 효과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제자의 개성을 고려하여 전공을 정해주고 성격이나 신분을 따져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특히 작은 성취도 칭찬으로 북돋아주었고, 게으름은 무섭게 야단쳤다. 문제의식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다산은 토론을 중시하는 한편 사제 합동 저술로 실전 훈련을 시켰다. 주요 경전을 외우게 하는 서당식 교육과 대비되는 이런 교육법은 현대 대학교육에서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차원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다산은 다른 학자들보다 뛰어난 제자들을 훨씬 많이 배출할 수 있었다.

‘초당’은 다산이 유배지에 지은 다산초당을 말한다. 정 교수는 다산이 편지에 기술한 선비의 이상향과 실제 다산이 유배지에 꾸린 초당의 모습을 비교한 결과 다산초당이 일종의 ‘꿈의 구현’이라고 본다. 제자인 황상한테 주는 글에 다산의 꿈이 펼쳐져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남향 마을. 어귀에는 절벽이 있어 끼고 돌면서 마을이 보여야 복지라 할 만하다. 정남향 한가운데 서너 칸 띠집을 얽는다. 방안에는 서가 두어 개에 1300~1400권의 책을 꽂는다. 뜰 앞에는 가림벽을 몇 자 높이로 세운다. 마당 오른쪽에 사방 수십걸음 연못을 파고 연을 심고 붕어를 기른다. 대나무 홈통으로 끌어댄 샘물이 넘치면 남새밭으로 흐르게 한다. 가까운 밭에는 아욱, 배추, 파, 마늘을 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오이와 고구마를 심는다. 마당 왼편에 사립문을 세우고 문밖 50보쯤 가서 바위 물가에 초가 한 칸을 세운다.”

본디 다산초당은 띠집으로 지은 동암과 서각 두 채였는데 이를 현재 세 채의 기와집으로 복원한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아내의 낡은 치마를 뜯어 그린 매조도 두 폭에 담긴 부정은 애를 끊는다. 유배지인 강진으로 데려온 딸을 자신의 제자와 짝을 지어준 다음에 그린 처음 것은 새가 두 마리다.

 “펄펄 나는 저 새가/ 내 뜰 매화에 쉬네/ 꽃다운 향기 매워/ 기꺼이 찾아왔지/ 머물러 지내면서/ 집안을 즐겁게 하렴/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겠구나.”

 35일 뒤 그린 두번째 그림은 새가 한 마리다.

“묵은 가지 다 썩어 그루터기 되려더니/ 푸른 가지 뻗더니만 꽃을 활짝 피웠구나/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 깃의 작은 새/ 한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리.”

강진에서 얻은 소실 태생의 딸을 위한 것이다. 소실 모녀는 나중에 서울을 찾아왔다가 강진으로 쫓겨가 다산초당을 지켰다.

지은이는 후학이 자기처럼 어려운 발걸음을 하지 않도록 모든 원자료들은 읽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영인해 붙였다.

논문집이라 읽기 어려울 것 같지만, 다산의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이야기에다 자료발굴 비화를 조곤조곤 풀어써 술술 넘어간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휴머니스트 제공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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