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곤장 앞에 장사가 없다 [박석무]

문근영 2012. 3. 24. 08:28

곤장 앞에 장사가 없다

『목민심서』를 읽다보면 백성들이 당하던 참상 앞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많지만, 유독 「병전(兵典)」의 첨정(簽丁) 조항에 이르면 백성들이 당하던 고통과 아픔이 그 지경까지 이르렀나 여겨져 가슴이 저려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첨정’이란 본디 병역의무자의 명단을 군안(軍案)에 올림을 뜻하지만, 다산은 군적(軍籍)과 군포(軍布)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조항으로 삼았습니다. 『목민심서』 전편으로 보아도 이 조항은 특히 양이 많고 또 내용도 참으로 상세하게 열거하여, 군적과 군포 때문에 백성들이 당하던 기막힌 사연들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의 글귀들이 이곳에 등장하고, 다산의 사회비판시의 절창인 「애절양」·「기민시」·「적성촌에 당도하여」라는 유명한 시들이 등장하는 대목도 바로 이 「첨정」조항입니다. 몸은 한사람인데, 두 이름으로 군적에 올려놓고 두 몫의 군역을 부담하게 만드는 고문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해놓고 있습니다. 본래 이득신(李得信)이라는 한 사람을 이동(李同)·이득(李得) 두 사람으로 군적에 올리고, 한 사람이 두 몫의 군역 부담이 너무 억울하다고 항의하자, 관청으로 잡아다가 곤장으로 고문하여, 형제 사이임을 사실이라 인정하는 허위자백을 하게 하고 희희락락하는 관리들의 모습을 표현해놓았습니다.

이득신이 “저는 형이 없고 본래 독신입니다”라고 형틀에서 직언을 하자, “거짓말 마라. 네 형이 있음은 온 고을에서 다 아는 일이 아니냐?”라고 다그치고, 병풍 뒤에 있던 기생이 “저 사람 형제가 우리 술집에 와서 술을 마셨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관장은 그 말에 확신을 얻어 독한 고문으로 끝내 자백하게 만드는 기막힌 광경을 기록했습니다. 속담에 “큰 곤장 아래에는 견딜 장사가 없다”라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을 진실로 여기고 착취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고발하였습니다. 아전과 기생이 짜고 속여 먹던 일을 관장은 모르는 체하면서 거기서 또 자기 몫을 챙기는 것입니다.

위계로, 권력의 강압으로, 곤장과 고문으로 백성을 억눌러 착취와 탐학이 성행하던 조선후기의 부란(腐爛)한 모습이 그 이상 더 생생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의 보도에도 매관매직이 행해지고, 인분처리장 문제로 온 도시가 구린내로 가득하다는 부패 양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사람들의 뇌물수수 문제도 심상치 않게 꼬리를 물면서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대적 빈곤에 울부짖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상인과 빈민대중의 신음소리는 갈수록 커져 가는데, 200년 전의 썩은 세상이 아직도 잔존해 있다니 너무도 서글픕니다. 다산의 탄식을 언제쯤이나 멈추게 할까요.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