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80 호 |
| 금반지의 위력 |
| 차 미 례 (언론인/번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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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기자 초년병 시절에 박정희 정부의 경제기획원 물가통계관인 여성공무원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별다른 업적보다는, 특수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데스크의 취재지시를 받았던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홍일점’이라는 말이 살아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고 날이면 날마다 물가가 뛰는 인플레이션 현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건국이래 전통(?)과 같았다. 물가는 내린 적이 없고 “쌀값 물값 연탄값 줄레 줄레 줄레....” 빚을 지고 사는 김지하 담시 ‘비어(蜚語)’의 주인공처럼 서민들은 언제나 먹고 살기에 허덕였다. 짜장면이나 쌀값이 건국이래 60여 년 간 몇백배가 올랐는지 보시라.
그때 나는 물가통계 품목에 판유리, 핫코일처럼 일반 국민의 생필품이 아닌 생소한 공산품이 포함되고,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물건은 최신제품이 아닌 전년도 모델이 통계에 잡힌다는 신기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지만 신뢰감 대신 뭔가 불편한 느낌이었다. 과학적인 통계방법이라기 보다는 항목구성이 억지스럽게 느껴졌고, “일반 국민들이 이런걸 자세히 알까?”하는 답답한 마음이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대표적인 소비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매월 조사하며 구입빈도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에는 가중치를 주어 물가지수에 더 많은 비중을 갖게 한다. 식료품, 의복 등 12가지 분야 500여 품목의 물가를 기준으로 5년만에 한번씩 이를 조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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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물가지수는 낮아지는데···, 주부들은 장바구니 들기가 겁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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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물가가 폭등을 멈추지 않고 드디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부 목표치 4%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런데 10월까지 평균 4.4%를 기록하면서 고공행진을 하던 물가가 갑자기 ‘뚝’하며 떨어졌다. 11월엔 4.0% 상승인데 그것도 4.0%이하가 아니고 미만이라니 목표치아래로 물가를 잡은 위업을 정부가 달성했다는 얘기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30년째 다니는 재래시장 상인들도 물가 때문에 죽겠다고 하고 명예퇴직, 정년퇴직자들은 비장하게 ‘안먹고 안쓰고 버티기’로 일관해도 무서운 물가탓에 다달이 빚만 는다고 아우성인데 이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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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은 금새 드러났다. 지난달 구직포기자를 빼고 실업률을 3%라고 발표한 ‘고용대박’ 통계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물가를 ‘수학적으로’ 안정시킨 것이다. 2005년부터 적용하던 조사품목과 가중치를 이번에 바꾸면서 12월1일로 예정됐던 물가지수개편을 한달 앞당기고 489개 품목에서 481개로 줄인 새 기준을 작년 1월부터 소급적용했다. 특히 몇 년 새 국제 금시세 폭등으로 가격이 7만원에서 22만원으로 치솟은 금반지가 물가상승 주범으로 제거대상이 되었고, 많이 오른 쌀과 전월세 등은 가중치를 낮췄다. 금반지는 93년도에 유엔이 자산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로 이제와서 소비품에서 제외되어 물가를 0.25%나 낮추는 효과를 발휘했다. 구제금융의 위기 시에는 국민들이 나라를 위해 헌납했던 금반지가 이제는 목록에서 빠지는 ‘제외효과’만으로 물가를 잡아주다니, 물건에다 애국훈장을 주는 서훈제도가 있다면 금반지가 받아야 한다.
나라의 물가지수 발표가 국민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와 괴리가 있었던 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통계의 마술”의 저자인 대럴 허프도 통계숫자는 조사자의 자의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통계조작의 유혹을 인정한다. 하지만 정부나 권력자의 의도적 통계조작에 속지 않으려면 뭔가 이상한 ‘감(낌새)’으로 그 허위를 간파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현실을 반영 못하고 체감물가와도 동떨어진 새 물가지수를 보면서 정권의 절박함과 다급함을 읽게 된다. 원자력발전을 녹색성장이라 강변하고 인위적 하천개발을 친환경사업이라 부르며 나무 몇그루 심은 개발지를 생태아파트라 명명하는 언어의 착란을 넘어, 이제는 정부발표의 엉터리 통계까지 가로 세로로 스캔해야 되는 우리 국민들이 참으로 딱하다. 더 나은 삶이 보이지도 않는데 말년에 국어와 산수까지 새삼 복습해야 하는 우리 중노년층, 등록금 마련에 허덕이다 간신히 대학졸업을 해도 구직포기자가 된 채 대대적인 고졸자 지원책이나 어이없이 바라보는 청년들.... 그래서 사람들은 촛불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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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차미례 |
· 언론인/번역가/서평가 · 前 중앙일보,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 前 출판저널 주간 · 前 문화일보 문화부장, 북 리뷰 편집장 · 前 KBS-TV 등 영화번역자 ·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卒 · 저 서: <미술 에세이> · 번역서: <강철군화 (잭 런던 작)> , <빅토르 하라 (조안 하라 저)> <성자와 학자 (테리 이글턴 저)> 등 · 번역영화: <가시나무새>, <야망의 계절>, <홀로코스트>, <코스비가족만세>,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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