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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사회구조가 삶을 가로막는다면 맞서 저항하고 괴로워 하는게 시인 정신”이라고 주장하면서 ‘희망버스’를 기획하여 온 세상에 비정규직 노동자 900만 명의 아픔을 사회적 이슈로 등장시켰던 송경동 시인이 제 발로 경찰서에 들어가 구속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오래 전에 수배되어 목발을 짚고 아픈 다리를 이끌며 ‘희망버스’를 안내하고 이끌어, 끝내 김진숙 지도위원을 고공 크레인에서 내려와 땅위에 발을 딛게 만들었습니다. 우주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 하나의 생명을 제대로 살려냈고,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을 국가적 아젠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해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신문에서 와이드 인터뷰를 계속하여, 나라 안의 지명인사의 한 사람이자 시인인 그가 죄를 짓는다는 죄의식은 전혀 없이 확신에 찬 신념으로 행한 정의로운 일이 비록 실정법에 위반된다 하더라도,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데도 왜 꼭 구속해야 하는지, 더구나 자수하여 제 발로 들어간 사람을 그렇게 인신을 구속해야만 되는 건가요.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의 기본 정신은 범죄자라도 일단 무죄추정을 받아야 하고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 원칙으로 되어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확신에 가득찬 행위를 하고서 왜 도주할 것이며, 또한 증거를 인멸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200년 전에 다산은 수사관이자 재판관의 지위를 겸한 곡사도호부사 시절에 엄연히 실정법에 위반하여 1000여명의 군중을 이끌고 관아로 쳐들어와 ‘관장(官長)은 물러가라’고 천지가 진동하게 외쳤던 시위주동자 이계심(李啓心)이라는 사람이 자수하자 포승으로 결박할 필요도 없다면서 맨몸 상태에서 재판하여 너무나 옳고 바른 주장을 했으니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 처벌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판결하여 무죄석방을 선고한 적이 있습니다. “관(官)의 잘못에 당당히 항의하여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한 정의로운 행위”라는 판결이유로 수배되었던 시위주동자를 통쾌하게 무죄 석방한 다산의 지혜를 오늘의 수사관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요. “정치가 밝지 못한 이유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몸보신에만 영리하여 통치자의 잘못을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판결이유로 오늘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어줍니다.
송시인의 죄가 무겁다고 봅시다. 그렇다 해도 그는 확신범 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왜 이런 추위에 구속되어 차가운 감방에 갇혀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가요. 다산이 살아있다면, 아무리 죄가 무겁더라도, 자수한 사람은 도망갈 이유는 없는 것이니 “몸은 풀어주고 재판을 받게 하라”고 분명히 소리칠 것입니다. 천금을 주며 칭찬은 못하더라도 자신을 희생하며 옳고 바른 일을 한 사람에게 구속의 불행을 당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다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될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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