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고광헌] 도배

문근영 2011. 12. 28. 11:45

도배

-물의 꿈

 

고광헌

 

 

풀 먹은 물의 꿈은

반지하 다섯 식구의 따뜻한 방

 

스르륵

벽지는 둥근 전신을 푼다

물은 온몸으로 낮아져

힘겹게 직립의 벽과 만난다

 

도배의 마지막은

웃자란 벽지의 키를 맞추는 것

 

물의 꿈에 취한 벽지는

벽과 한몸이 된 듯 맞서기도 하지만

묵직한 쇠잣대에

즐겁게 가위눌린다

방의 키에 제 몸을 맞춘다

 

창밖은 봄바람

고향처럼 아늑한

직립의 방

 

물의 꿈이 이뤄진다

 

 

 

-시집『시간은 무겁다』(창비,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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