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잡기
박성우
올해만큼은 풀을 잡아보겠다고 풀을 몬다
고추밭 파밭 가장자리로, 도라지밭 녹차밭 가장자리로 풀을 몬다
호미자루든 괭이자루든 낫자루든 잡히는 대로 들고 몬다
살살 살살살살 몰고 싹싹 싹싹싹싹 몬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무릎,온몸이 쑤시게 틈 날 때마다 몬다
봄부터 이짝저짝 몰리던 풀이 여름이 되면서, 되레 나를 몬다
풀을 잡기는커녕 되레 풀한테 몰린 나는
고추밭 파밭 도라지밭 녹차밭 뒷마당까지 풀에게 깡그리 내주고는
두 손 두 팔 다 들고 낮잠이나 몬다
-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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