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이화은
나의 神은 언제나 왼쪽 귀로만 온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편애에 익숙한 그는 왼손잡이인지도 몰라
사륵 사르르
긴 옷자락을 끌며
하루도 빠짐없이 전례처럼 그가 다녀가고
내 왼 귀는 그래서 종교적이다
지극히 도덕적이다
오른 귀의 낭만과 사철 부는 바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좌우의 기류가 풀 멕인 하늘처럼 팽팽한 날
그런 날은
성난 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데칼코마니 같은 내 몸의 경계에는
반절짜리 연애가 산다
절반쯤 달려가다 돌아오고 돌아오는
슬픈 연인이 산다 그래도 모른 척 신은
왼쪽 귓속에 더 깊은 소리의 동굴을 파고
사르륵 사륵
오늘 밤도 내 왼쪽 귀는 거룩한 순교를 꿈꾸며
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미네르바』(2011년 겨울호)
---------------
이화은 / 경북 경산 출생.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절정을 복사하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서귀자 원글보기
메모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상개] 시간 깔아뭉개기 (0) | 2011.12.20 |
---|---|
[스크랩] [오탁번]폭설(暴雪)-[심재희]폭설-[공광규]폭설-[한서정]폭설 (0) | 2011.12.20 |
[스크랩] [이영옥] 폭설 (0) | 2011.12.20 |
[스크랩] [이재무]몸살 (0) | 2011.12.20 |
[스크랩] [김진완] 푸른 귀 (0) | 2011.12.20 |